Steins;gate 저장소

재액강탄의 홀리데이 본문

팬픽,웹소설

재액강탄의 홀리데이

rennes 2020. 10. 2. 15:35

내뱉는 숨결이 하얗다. 나는 UPX앞의 횡단보도를 빠져나와, 이젠 상당히 거리에 익숙해진 신명소, 건담카페 앞에서 몸을 숙이고서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폐가 더욱 더 산소를 요구한다. 목구멍 속이 말라붙어있다. 희미하게 피 맛까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안돼.......이런 식으로 아무리 찾아 다닌다 한들, 그 작은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좀더 체력을 길러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 그 녀석이라면 좀 더 오래 달릴 수 있었을 터. 이미 이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소녀를 떠올린다.빈티지 풍의 츄리닝에,날씬하게 뻗은 손발. 마치 들사슴같은,여성 운동선수라도 이러랴 싶을 그 풍모를.


그리고......그 다음 떠오른 것은,어떤 소녀의 모습. 강한 의지를 숨긴 짙은 보라색의 눈동자, 작은 몸을 감싸는 도전적인 기백과 지성이 넘치는 아우라. 그 녀석이라면, 좀 더 지적으로 머리를 써 이 난국을 해결해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지금은 그녀가 없다. 내 곁에는 없다.


빌어먹을, 약해지지 마!


자기 자신을 질책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한 겨울 아키하바라의 하늘은, 어느새 회색으로 흐려져 있었다. 강수확률 0%라는 예보는, 완전히 틀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결국 우리들은 세계의 모든 것을 예측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마유리로부터다. 핸드폰을 빼서,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카링......안되겠어,표식이 있는 장소,전혀 보이지 않아......"


울 것 같은 목소리.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 같이,절망적인 기분에 삼켜 질 것 같은 기분을 어떻게든 참아낸다.나도 그냥 울어버리고 싶은 심경이지만,지금은 마유리에게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필사적으로 떨쳐 내고,다음에 찾아볼 지점을 지시한다.


루카코로부터는 연락이 없다. 다루도 필사적으로 넷을 검색하고 있는 듯 하지만,아직까지 성과는 올리지 못한 듯하다.메이퀸+냥^2에서의 업무가 있는 페이리스의 제안에 의해,집사 쿠로키씨는 움직여주고 있지만,이쪽으로부터도 별다른 보고는 없다.즉,수색은 잘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그 자그마한 모습을,이 거대한 거리 속에서 잃고나서부터,몇 시간이나 지났다.미스터 브라운,모에카,어짜서 전화를 받지 않지......?역시 일이라고 했던 것은,SERN관련인 건가......?


"빌어먹을!"


큰 소리로 욕을 내뱉는 나에게 주위 사람들이 기이한 시선을 보맸기 때문에,빠른 걸음으로 그자리를 떠나갔다.


알고 있어,역시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대체,어째서 이렇게 되버린 걸까.딱 한시간 전까지는,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을 텐데.시작은......하필이면 랩에서부터였다.

 

 

 

 

 

 

 

 

 

 

 

 

얼어붙는 듯한 바람에 옷깃을 세웠다.


살색의 면적이 비상하게 많은,미소녀게임 전단지가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조금 무거운 비닐봉투를 손가락 끝으로 돌리면서,저속한 핑크 전단지나 이삿짐 서비스 전단지 등이 붙어있는 게시판을 곁눈질하며 꾀죄죄한 분위기의 브라운관 공방 옆의 계단을 올라갔다.구두굽 소리가,차가운 공기속에서 울려퍼졌다.조금 삐걱거리는 철제 문을 열었다.랩에 들어가서는,털실과 피부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어,목에 두른 머플러를 푼다.


방안에는 석유 난로가 하나 있다.타지 않는 쓰레기 버리는 날에 랩멤버가 총출동해서 주워온 물건으로,상당히 소중히 여기고 있다.바로 온기를 얻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이미 거다란 비곗덩어리가 그 앞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다루여,적당히 그 앞에서 비키지 않으면 구운 고기가 되어버릴거다.여기저기서 팔고 있는 칠면조 처럼 말야.아니,도넬 케밥이려나."


"누훗.심한 말을 해대는군 오카링은."


빛나는 꿀색의 불꽃으로 손을 뻗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다루는,곧바로 입을 3 모양으로  구부려서 불평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이상한 데서 2차원 스킬을 발동시키는 남자로군,이녀석은.


"그렇게나 피하지방이 있으니,분명 추운 데는 강할 텐데."


"그래도-!추운 건 추운걸!아무리 피하지방이 두껍다고 해도!"


"뚯뚜루-♪오카링,추운 건 모두 똑같으니까,다루군만 탓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자에 앉아서,미싱을 하고 있던 마유리는 방긋 웃으며 우등생적 발언을 한다.


"옷,신작 의상인가?그것도 루카코에게 입히는 건가?"


모 염가의 양판점에서 사온 닥터 페퍼 500미리 페트병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묻는다.


"응,루카군도 겨울 코믹,기대하고 있답니다-.연말의 대무대를 향해 마유시이☆도 힘내서 솜씨를 발휘하고 있어-요."


마유리는 선언하듯 한 손을 주먹쥐고는,다시,방긋방긋 미소를 띄었다.


그렇다곤해도......평화롭군.나는 핸드폰을 빼서 귀에 가져다 댔다.


"나다.----지금은 모든것이 평화롭지만, 이것 저것 다 너무 순조로워서 수상쩍다.우리들을 헤엄칠 만큼 헤엄치게 해 놓고 일망타진 하려고 하는 국가적 음모의 포석일지도 몰라.아무쪼록 경계를 늦추지 마라.엘 프사이 콩그루."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또 나왔어?중2병 왔다 이거(キタコレ)"


다루가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였지만,나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나 중2병적 언동이라고 하는 자각은 있다.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의식.가혹한 체험과는 관계없는,평온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마음을 다스릴 정신적여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결국 이것은,수개월 전의 그 악몽같은 기억을 잊기 위해......일지도 모른다.솔찍히 아직도 나는,한밤 중에 때때로 그 일련의 사건의 꿈을 꾸고 벌떡 깨는 경우가 있다.그럴 때는 언제나 목덜미부터 등줄기까지 식은땀에 푹 젖어버리곤 한다.쌕쌕 숨을 쉬면서 '사라져 버렸을 터인 세계'의 기억에 떤다.달라붙는 핏방울,생기 없는 어두운 구멍이 되어버린 눈동자,힘없이 늘어뜨려지는 하얀 팔,그리고 엷은 색의 말차 젤리같이 무너져가는--너무 많다.몇번이고 몇번이고 지켜보게 되었던 죽음의 무한회랑,마주세운 거울같은 생지옥.하지만,그런 악몽에 붙잡히는 것도 점점 줄어가고 있다.시간이 흐르면,세계는 회복한다.온갖 이야기는,일상으로 수속한다.


실제로 요 몇 개월간,세계는 극히 평화로웠다.


이 나,호오인 쿄마(鳳凰院凶眞)라고 하는 오카베 린타로에,마유시이☆라고 하는 시이나 마유리,그리고 다루라고 하는 하시다 이다루.여름이 겨울로 변했지만,우리 3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변함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일상이라 함은 연속되는 변함없는 나날을 말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그렇다,그런 의미에서라면 가을에 퇴원하고나서 이 수개월은 틀림없이 '일상' 그 자체였다.


변한 것이라고 한다면---


"음..."


PC를 슬립모드에서 복귀시킨 나는,메일 박스에 한통의 메일이 도착한 것을 눈치챘다.서둘러 마우스를 움직여 클릭해서 메일을 본다.

 


----------------------------------------------------------------------------
TO 오카베 린타로님   FROM 마키

   제목:외로워요
   최근......남편이 신경써주지 않아요.
   입이 무거우며,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연락해 주세요.
   ▲중요▼게스트님!!오늘부터 <<영구무료>>
   완전승락※24시간※
----------------------------------------------------------------------------

 


"......"


낙담한다.무척 낙담한다.단숨에 텐션이 내려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수 있었다.통판으로 무언가를 클릭했을 때,검색 로봇에게 메일 어드레스가 알려지기라도 한 건가.스팸메일 보내는 모든 자여......죽어버리도록 해!저주를 보내며,소거 폴더에 메일을 넣는다.실의와 함께 후우 하고 한숨이 나왔다.


"오카링,또 메일 오지 않았나 체크중임?핸드폰 다음은,PC마저 핥아대듯이 워치 입니까 그런겁니까."


다루가 질린 얼굴로 말한다.


"오카링, 좋겠다-.역시 리얼충씨는 다르네-."


마유리마저,조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이야기에 끼어든다.


"뭣......"


"여름방학이 끝나고 정신차려 봤더니,절친(親友)이 리얼충으로 클래스 체인지했다고 한다......그거,무슨 안습겜?"

"무슨 말을 하는 거냐.나와 크리스티나는 아무 관계도 아냐!......저속한 추측은 그만두도록 해!"


"추측이고 뭐고,마키세씨의 이름같은 건 한마디도 안나왔는데......뭣보다 남자 츤데레,모에하지 않는다고.죽어(氏ね)버려 진짜로.처음 만난 그 날부터 운명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달음박질 모드이고.그야말로 데스티니 오브 러브?러브 오브 썬더?나는 지금,울고 있어......울고 있는 거라고!"


"크리스쨩은 귀엽고,머리도 좋고-.안심하고 오카링을 맡길수 있어요-♪하지만,크리스쨩이라면 프라이빗한 메일은,분명 랩의 PC로는 안보내지 않으려나-라고 마유시이는 생각한답니다."


"마키세씨는 그래봬도 꽤나 로맨티스트니까.밤중에 오고가는 사랑의 교환메일......쿠오오,역시 죽어 오카링 죽어.비싼 국제메일 지나치게 보내서,핸드폰이 끊기는 초전개를 희망."


다루와 마유리가 한명한명씩 점점 열을 띄며 말해간다.나는 얼굴의 표면온도가 약간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잖아!다,단지,어떤 연구에 관해 비밀리에 의견교환을......!"


"예 예,이 세상의 온갖 사랑의 비밀을 밝혀낼,12번째의 이론을 둘이서 열심히 연구 중인 거군요 이해합니다."


"바,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나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단언컨데 야심을 잊고 색정에 붙잡히거나 하지 않아!애초에 조수는 지금,미국에 있는데다......"


"저기,좀 더,오카링으로부터도 연락해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나?크리스쨩도, 그러는 걸 분명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


퉁명스럽게 나는 입을 다물었다.그녀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때떄로,뭐,좀 친밀하게,메일을 주고받을 뿐인 사이로......


"크리스티나는 지금,중요한 연구로 바쁘단말이DA!나는 그녀의 짐이 되고싶지 ANA!휙-휙-!남자로군,오카링!거기에 반했어,동경해!"


다루의 흉내가,더욱 더 내 기분을 거슬린다.젠장,정말이지 사람 열받게 하는 데 재주있는 자식!


"다루여,적당히-"


그 때,문의 노크 소리가,내 말을 막았다.


"잠깐,실례한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양없이 들어온 건,근육질의 꾀죄죄한 남자였다.이 아래 브라운관 공방의 점장 텐노지 유우고다.


"오,오오......미스터 브라운인가.무슨 용건입니까?"


솔직히,집세를 연체해야 할 것 같은 작금은,그닥 보고싶지 않은 얼굴이지만......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날 줄은,이번은 굿 잡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말해 두겠습니다만,집세라면 당장은 낼 수 없습니다.어제 새로운 가제트『휴대전화형 레이저 광선총』과『아이템 겟터·로보 삼호 을(乙)형』의 개발을 착수하기 시작해서---"


덧붙이자면 후자는,라디콘 로보를 개량해서 매직핸드를 장착,비 리보콘으로 조작 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왜건세일 속의 중고 게임부터 장롱 뒤의 100엔 동전까지,뭐든 주워 올 수 있다고.


"너에게 용건따윈 없어.하지만,여전히 쓸데없이 잘난 척 하는군,너는......"


잘 보니,팔짱을 낀 미스터 브라운 옆에는 모에카가 서 있었다.여전하다고 해야 할 지,존재감이 희박하다......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건지 안한 건지 모를 정도로 살짝 인사를 보내온다.뭐,처음 만났을 때처럼 갑자기 메일을 보내오지 않는 만큼,진보는 하고 있는 거겠지.


"용건이 있는건 마유리 아가씨다.우리 나에 때문에말야."


미스터 브라운은 자신의 뒤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그 두터운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한 명의 소녀가 서 있었다. 텐노지 나에---내가 멋대로 작은동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생 여자아이.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이 조폭같은 거한의 딸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실은 말야,마유리 아가씨에게,잠시 나에를 맡기고 싶거든."


"에에-,마유시이에게-!?"


"뭐......라고!?"


"와오,나에땅을?히얏호 왔다이거(キタコレ)"


눈을 빛내는 다루에게,미스터 브라운은 번뜩 하고 살기가 담긴 시선을 던진다.다루는 한순간에 석화되어,산산히 부서져서 흩어졌다!......란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급한 용무가 있어서.이 알바도 데리고 나갔다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됬어.좀 늦어질 가능성도 있어서말야......"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이 시기에 평소에도 한가하기 짝이 없는 브라운관 공방이 대체 무슨 일이 있다는 거냐.설마 케이크집으로 가게를 바꾼 것도 아닐 테고.


"하지만 말입니다,미스터 브라운.여기는 인류의 예지가 모이는 미래를 위한 요새이지,어린애 놀이터가......"


"너의 의향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데다,난 마유리 아가씨에게 부탁하고 있는 거다.자,어때 마유리 아가씨?나에도 아가씨를 잘 따르기도 하고."


"저어저어,마유시이는 전혀 상관없는데요......역시 오카링들도 있는 편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좋아,그 충성심은 상찬을 받을 만 하다.


"그렇습니다,이건 횡포라고요 미스터 브라운.거기 있는 시이나 마유리는 애초에 랩 멤버002니까 나의 허가를 얻어야만 합니다."


"칫,그러냐 그러냐.어쩔 수 없군,그럼 너에게도 부탁하지, 오카베.하는 김에 집세도 좀 더 기다려 줄 수도 있다고?하지만,나에를 조금이라도 무섭게 하거나 울리거나 한다면......그 몸을 꺾어 버리고는 역 앞의 호노덴 빌딩 옥상에 매달아 버릴 테니까!"


말하면서 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어깨를 푼다.뿌득,뿌득 하고 굵은 뼈마디가 내는 소리.마치, 근육을 보다 적절한 위치로 이동시키는 것 같다.


"윽......"


나는 그 '유언(有言)의 압력'에 눌리면서도,턱을 손으로 받치며 생각했다.


미스터 브라운과 모에카가 굳이 함께 나가야 할 용무......「SERN」「임무」란 단어가 차례차례 머리에 떠오른다.하지만,나는 즉시 그 사고를 정지시켰다.나는 「지금」이 소중하다.지금, 이 장소에 있는 모두와의 시간이......이 이상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지키고 싶은 장소,지키고 싶은 시간.잃고 싶지 않은 것을,나는 이미 가지고 있다.그 가치도 알고 있다.그러기에 그 여름 이래,나는 그들의 일을 탐색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그들의 숨기고 있는 얼굴이 어떤 것인지,아니,애초에 「여기」에서는 숨겨진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조차,알려고 하지 않았다.모르기에,마음 놓을 수 없는 이웃지간으로 있을 수 있다.그렇다,어른에겐 여러가지 사정이 있는 법이다......


"혼자서 집지키기......라는 건,안됩니까?"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히얏호!혼자서 할 수 있는거~얼!"


......닥치고 있어,다루여.괜시리 이 맹수를 자극하지 마.


"나에는 무척 영리하기도 하고,굉장히 착한 아이인데다 착실하기까지 하니 무리는 아니지만 말야."


기분 나쁘니까 히죽히죽 거리는 건 그만 둬,미스터 브라운이여.그 느슨해진 입에,네놈이 싫어하는 말린 정어리를 한 묶음 정도 쑤셔박아 버린다?


"요사이 꼬마애를 전문으로 노리는 예의 유괴조직의 소문도 있고,이 근처도 뒤숭숭 하니까말야.한번 들어주지 않겠나,일단 연락용 핸드폰도 나에에게 갖고 있게 할 테니까."


잘 보니,나에의 기묘한 검은 생물형 포셰트에서,최신형이라고 생각되는 핸드폰의 머리 부분이 보였다.일부러 사 준 건가......팔불출은 일단 내버려두고,조직이란 최근 뉴스에서 나오고 있는 거 말인가.물론 SERN은 아니다.아무래도 러시안 마피아라던가 꽤나 뒤숭숭한 것과의 관련성이 의심받고 있는 듯 하지만......


망설이는 사이,마유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카링,괜찮지 않을까나.나에쨩,이브에 외톨이로 있으면 불쌍한걸-"
"아,아니......하지만말야......"


"저기저기,부탁이야-"


마유리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쥐고,애원하는 자세에 들어간다.우......왠지,주워온 강아지를 키워도 되냐고 조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뭐어......너가 그렇게 말한다면 생각해 보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 여름으로부터 가을을 맞이하고,거기에 수개월.랩 안에서 변한 것 제 2라면,마유리의 이 애원에 내가 조금 약해졌다는 것.그런 연유로 다음 순간, 일말의 불안을 느끼면서도,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에헤헤-♪나에쨩,이쪽으로 오렴-"


 마유리가 만들던 의상을 옆 소파 위에 두고,나에를 향해 손짓했다.


 마유리 만큼은 잘 따르는 작은동물은, 부친의 등 뒤를 부랴부랴 빠져나와,그녀에게 다가갔다.마유리가 무릎을 세운 자세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즈음에는,완전히 웃고있다.랩의 분위기가 변한다.나에는 간지러운 듯이 웃으면서,입가를 일그러뜨리고 있다.미스터 브라운은 얼굴을 쭈글쭈글 일그러뜨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다루조차 사심으로부터 해방되어 정화직전의 악역과도 같이 평온한 미소를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본다.마치 좁고 지저분한 랩의 한쪽 편에,거기서만 슬쩍 봄이 온 듯한.......


 이 감싸안듯 상대의 경계를 풀고 마음을 함락시키는 능력은,틀림없이 마유리의 천성의 재능이다.이전의 나라면「힐링 오브 로드」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을 지도 모른다.


 "음.일단,마유리에게 맡기면 걱정은 없을 듯 하지만......"


 "네-에,마유시이에게 맡겨줘 랍니다☆일 열심히 하고 오세요,점장님♪"


 "일 열심히 하고 오세요......?여아와 돌아오길 기다리는 어린 신부,모에."


 안되겠어 이녀석....이미 구제할 여지도 없다.말기증상을 보이고 있는 다루는,방치결정.


 "오오,고마워.은혜를 입었군,마유리 아가씨."


 미스터 브라운이 속이 나빠질 것 같은 윙크를 하고,모에카는 머뭇머뭇 고개를 숙여보였다.


 "......꼭 뭔가,기념품 사올테니까!"


 미스터 브라운은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 말하면서,모에카는 무표정인 채로, 둘이 함께 랩을 떠나갔다.철제 문이 밖의 냉기를 내보내며,철컹 하고 닫혔다.


 "자-아 나에쨩,오카링 아저씨야-"


 "오빠라니깐."


 마유리는 나에의 뒤편에서 겨드랑이를 안아 올려,그녀를 내쪽으로 향하게 한다.


 시선이 마주쳤다.눈은 마음의 창---아니,거울이었던가?그것 참,어느 쪽이 바른 격언이었었지?


 "......"


 자신의 얼굴의 표정근이 움찔움찔 경련하는 걸 느꼈다.뭐라고 해야 할까,심히 대하기 힘들다......


 그 슬픔의 복수자는 이제 어디에도 없을 터이다,라고 이성으론 알고 있다.모에카도 푹 죽여버리고,나를 괴롭히고,살을,상처를 후벼파댔다.격통과, 피부를 흐르는 미지근한 피의 감촉......물론 지금,여기 있는 것은 단순히 무해한 여자아이다.그건 알고 있지만서도.


 "......"


 "......"


 결국,10초 정도 얼굴을 마주보면서도,나와 나에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인사같은 것 조차 나누지 않았다.하지만,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되.뭔가를.


 "학교 쪽은......어때?재미있니?"


 침묵이 나에게 시시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럭저럭,이요."


 이쪽의 긴장감이 전해지는 건지,나에도 가면처럼 경직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회화의 캐치볼,단 서로간에 구종은 포크볼,이라고 할 상황인가.어,어색해......둘 다 붙임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성품이다.애시당초 여자아이와의 자연스런 회화의 노하우따윈,내 백의의 주머니를 까뒤집은들 나올 리가 없다.


 "정말 오카링,어쩔 수가 없네.자 자,이쪽은 다루군이야.몸집은 커도 무섭지 않아요-"


 나와 나에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공기를 털어내듯,마유리는 이번엔 나에를 다루와 대면시킨다.어이어이,그 HENTAI신사에게,조심성없이 어린애를 접근시키다니......마유리녀석,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버렸어!


 "나에땅,다시 한번 잘 부탁해!나는 하시다 이다루,사람들이 말하기를 슈퍼 해커.태아에서부터 묘령의 누님까지,이 세상 모든 여성의 편이야.하지만 할머니 만큼은 참아줘."


 다루는 목을 조금 기울여서,얼굴에 음영을 만들어 두려워 하는 게 없는 듯한 웃음을 연출하려고 하면서,작게 엄지를 세워 보인다.


 "......"


 A.T.필드라도 이러하랴 싶을 무언의 절대장벽.기가 죽은 다루는 "다시 한번,잘 부탁해!"라며 또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지만,이것도 완전완벽하게 무시당한다.이리하여,큰 몸집에 감춰졌던 유리심장은,채앵 하고 금이 가는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한순간에 새하얗게 불타버려,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는 다루.이런이런,여기선 일단,내가 다시한번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겠군.


 "후-하하하하!내 천년왕국의 초석,내 야망의 아성,내 비밀의 화원인 미래 가제트 연구소에 온걸 환영한다,텐노지 나에여!"


 가공의 망토를 펄럭 하고 펼치며,나는 상당히 오래간만에 「호오인 쿄마」가 되어 스스로를 무장시켰다. 방금 전 까지의 어색함이 거짓말인 것처럼,큰 목소리를 낸다.나와 나에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금새 양지의 살얼음처럼 사라졌다(어디까지나 나의 시점에서,이지만).좋아,역시 이 모드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모처럼의 방문객이다,내 연구소의 예지의 정수,미래 가젯트들을 피로하지 않을 수 없군!자아,사양할 필요는 없다!"


 ---그 후,나는 비틀비틀하며 안쪽의 금속 선반과 책상을 몇번이나 왕복해서,수많은 발명품을 나에의 눈앞에 펼쳤다.


 1호기『비트 입자포』.2호기『타케코프카메라(*1)』.3호기『혹시오라오라입니까-앗!?』.4호기『모어드 스네이크』.5호기『또 시시한 것을 이어버리고 말았다 by 고에몬』.6호기『사리움 세이버』.7호기『공각기동미채볼』......참고로,8호기(*2)는 영구결번이다.


 이것도 저것도 지금와서 보면,실용성 없는 잡동사니들 뿐.하지만,나에같은 여자아이에게는 충분히 흥미를 가질 대상이 될 터......라고 생각했지만.


 "......"


 나에는 『타케코프카메라』와 『혹시오라(생략)』을 손에 쥐어 살펴보더니,금방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고......그대로,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입다물어 버리고 말았다.젠장,분명 쓸데없지만,이래봬도 미래 가제트는 장식품이 아냐.작은동물은 그런 것조차 모르는 건가.


 "와와-?이거,오카링이랑 다루군이 열심히 발명한 건데-?그러엄 그러엄 나에쨩,이거는?이거는-?"


 마유리는 이번엔 『비트 입자포』를 왼손,『타케코프카메라』를 오른손에 들고 나에를 향해서 자아 자아 하며 내밀어 보여준다.


 "......"


 나에는 그 중 『비트 입자포』를 받아 들고,거기다 발 아래의 가제트를 하나 쥐어 들었다.『사리움 세이버』......그리고 나서,목을 작게 갸웃거리곤 『모어드 스네이크』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


 난 다시금 전율을 느꼈다.『비트 입자포』와『사리움 세이버』,게다가 겉보기엔 클레이모어 지뢰같은 모양의『모어드 스네이크』.이 3개의 요소가 가리키는 공통점은......무기형.그 악몽 속에서 몇 번이고 맡은,숨막힐 것 같은 피냄새가 되살아난다.작은동물은,무기류를 모방한 가제트에 흥미가 있다고 하는 건가......다시말해,역시 이 여아 속에는,미래에 냉혹한 복수자가 될 자질이......?


 그 떄,또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뭐야,계속 손님이 오는군.


 "열쇠는 열려있다.들어와도 좋아."


 "실례,합니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루카코였다.오늘은 무녀복이 아니라,점퍼를 걸친 캐쥬얼한 차림이다.


 "오카베씨,하시다씨,마유리쨩,안녕하세요."


 "루카코여,감점 1이다."


 나는 검지를 세우고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엣?"


 루카코가 일순 깜짝 놀란 표정을 보인다.


 "몇번 말해야 알아듣는거냐!내 이름은 호오인 쿄마!이 세계에 비견할 자 없는,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호오인 쿄마---그래,그건 나의 진명.일반인과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었지만,요즘엔 이름을 댈 일이 부쩍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루카코의 등장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굿 타이밍이었다.한 순간 스친 공포와 오한을 털어내기 위해서도.이리하여,호오인 쿄마를 계속 연기할 수 있어.무대는 계속 해야만 해.


 "아아 그랬었죠,죄송합니다 오카......쿄마씨."


 루카코가 죄송한 듯이 허둥거리며 머리를 숙인다.


 "아직 부족해!예의 말은 어떻게 했나!"


 "아아!에,그러니까,엘 프사이 콩가리......"


 "엘 프사이 콩그루!대체 몇번이나 말해야 기억할 거냐 너는!"


 "그러고보니 오카링,전부터 생각했던 거긴 한데,『광기』의『매드』사이언티스트라면 의미 겹치지 않아?"


 새하얀 페이즈시프트 장갑해제상태로부터 복귀한 다루가,옆에서 태클을 걸어온다.


 "입 다물어 외야.정말이지......루카코여,몇번 말해야 이해해 주겠다는 거냐.이제 적당히 내 제자로서 자각을 말이지......"


 "왓왓......저,힘낼테니까......"


 루카코는 울먹거리면서,문득,옆의 나에를 알아차린다.


 "쿄마씨,이 아이는?"


 루카코가 나에게 묻는다.


 "나에.텐노지 나에."


 "에,텐노지라고 하면......?"


 "그 말대로.브라운관 공방 미스터 브라운의 딸이다."


 "아아,과연,그렇게 된 거로군요.-처음뵙겠습니다,나에쨩.전,우루시바라 루카라고 합니다."


 루카코는,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뭐야,루카코와는 처음 만나는건가?의외로군."


 "예,몇번인가 보기는 했지만,확실하게 인사 하는 건......모쪼록,잘 부탁 드립니다."


 예의바른 성격인 루카코는,상대가 어린 여자아이라 해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잘,부탁드립니다.루카......언니."


 나에도,루카코에게 얌전히 머리를 숙였다.


 "에?언니......?"


 의외인 듯 중얼거리는 루카코.나는 크게 웃었다.


 "후~하하하!속았군,작은동물이여.루카코는 정진 정명한 남자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나에는 일순 흠칫 몸을 떨었다.그리고 빠르게 곁에 있는 사람의 뒤로 돌아가려고 하다가......다리가 꼬인 것처럼 보였다.


 "앗."


 자기 뒤에 숨으려고 한 작은동물의 위기를 알아차리고,루카코가 손을 뻗는다.하지만 나에는 그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휙하니 루카코의 허리에 팔을 둘러버리고 말았다.자연히,루카코에게 안기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에?저,저기......"


 동요하는 루카코였지만,그래도 머뭇머뭇 웅크리며,나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후후..."


 당치않게도,나에는 생긋 웃고 있다.거기에 이끌리어,루카코도 미소짓는다.두사람 사이에는,한손간에 친밀한 공기가 가득찬 공간이 생기고 있었다.


 이 무슨......나와 다루에게는 그렇게나 완고했었는데.으음......'하지만 미인,완소남 한정'.그런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음,루카코는 어느쪽이지?오히려 양쪽 다인가?아니,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래,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문제는 나에가 실질적으로,루카코를 벌써 함락시켰다는 것이다.얕볼 수 없는,작은동물......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나에와 시선이 마주쳤다.


 응?이 녀석 지금,시선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피하지 않았나?나를 두려워해서 무심코,란 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뭔가,저 눈돌리는 모습에서는 어떤 의도가 느껴지는 듯한.......


  나는 헉 하고 깨닫는다.으음,방금 전 그건 루카코가 안아서 막아줄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발이 꼬이는 척을 한 건가......?맘에 드는 남자(?)를 책략을 꾸며서 농락한다......그런 사악한 사고(思考)의 싹이 나에에게 있다고 한다면,그건 미래의 스위츠(웃음)(*3)가 된다고 하는, 비극의 발생을 암시하는 건 아닌가?그야말로 의심암귀.으음,일단 의심하기 시작하면,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런 나의 의혹을 아는지 모르는지,나에는 갑자기 밝아져서는 그 최신형 핸드폰을 꺼내,플랩(*4)을 열었다.


 "루카 언니,나랑 전화로 적외선통신 하자......괜찮지?"


 "에?하지만 난......"


 방금 전에 처음 만난 나에가,갑자기 적극적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에 루카코는 당황한 것 같다.


 "괜찮다니까,자자."


 "아,아우......"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루카코는 적외선통신에 의해,핸드폰 번호를 교환 당하고 말았다.척 보기에,천진난만한 어린애가,순진함에서 오는 강함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지만......수상쩍어......


 "아하하.루카군이랑 나에쨩,벌써 사이가 좋아졌네-"


 마유리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나에는 루카코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걸 그만둔다.그리고나서,슥 오른손을 내밀어 마유리의 손을 잡았다.왼손은 루카코의 손을 꼭 쥐고 있었기 때문에,자연히 마유리와 루카코,양쪽 모두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양손의 꽃인가.더욱이 다음 순간,나에는 가끔 미스터 브라운에게 보여줄 때 같은,응석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있잖아,루카언니랑 마유리 언니에게 부탁이 있어......나,바깥에 놀러 나가고 싶어."


 "에......밖에?"


 "응.여긴,지루하잖아?그러니까, 거리에 나가서 이것저것 보며 돌아다니고 싶어."


 "......라고 합니다만.어떻게 하시겠어요,쿄마씨?"


 "오카링,함께 가자-."


 젠장,인류의 예지와 미래로의 가능성으로 가득 찬 이 미래 가제트 연구소가,지루하다고?조금 쇼크였지만,그 순간,내 머리속에 번뜩임이 왔다.


 "흠......어쩔 수 없군."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나는 일부러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에-엣,이렇게 더럽게 추운데 나가는거야?정말로?동사해 버릴걸 상식적으로(常考(*5))."


 다루는 곧장 불평을 했지만,내가 제지했다.


 "알겠으니까 냉큼 준비해.마유리랑 루카코,너희들도다."


 "응-,알았어-♪"


 "예,쿄마씨."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다루는,그럼에도 의자 등받이게 걸쳐 두었던 두터운 점퍼를 집어 들었고,방긋방긋 거리는 마유리는 옷걸이에 걸어둔 더블 코트를 꺼내,걸치기 시작했다.


 방금 랩에 왔던 루카코와, 마찬가지로 조금 전에 밖에서 돌아왔던 나는 아직 방한 코트를 입고 있는 채였다.다만,머플러만은 다시 두르지 않으면.


 실은,방금 전에 선선히 외출을 허락해 보였던 건 생각이 있어서다.이 작은동물은,어쩌면 위험분자일지도 모른다.만에 하나,나에가 그 세계선에서의 사악한 모습으로 이어질 것 같은,숨겨진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빨리 징후를 알아내서,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물론,여기에선 "미스터 브라운의 죽음"이라고 하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그 무참한 인과를 낳는 방아쇠는,당겨지지는 않았다.그렇더라도,만약이라는 게 있다.


 「버터플라이 이펙트」「무척이나 사소한 일이」「비극적인 미래로 이어질 가능성」......그런 문장이,차례차례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졌다.그렇다면 실험과 관찰이 필요하다.저 몰모트적 작은동물을 비좁은 랩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온갖 자극을 받게 해서,반응을 떠보는 것이 적절......아참,그 전에.


 슥 주위를 둘러보고,아무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그리고나서,슬며시 핸드폰을 꺼내서 조작한다.


 "......으음."


 메일은 오지 않았다.최근,연구가 박차를 가해서 바쁘다,라고 말했었지.문면이나 이모티콘으로부터도,그녀의 생활이 충실한 것이 전해져 왔다.어쩔 수 없다.게다가,바쁠 때일수록,쓸데없이 메일을 받으면 귀찮겠지.그런 기분이 든다......그래,지금은 내가 참아야만 한다.


 도쿄를 떠나기 전에,즐거운 듯이 다음 연구 테마를 말하던 그녀.그 미소나 눈동자의 반짝임,거기에 깃든 지성의 빛을 떠올리며,나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 때,나는 문득,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봤다.거기엔......나에가 서 있었다.


 "......"


 마유리들에게 보이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나에는 다시,무표정하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라고 생각했더니,아까와 마찬가지로,금방 눈을 돌려버리고 말았지만......그 전에 한 순간,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었나?내 의심 때문인가?


 (......칫,중2병에 피자돼지,방해되는 벌레(*5)가 2마리나)


 그런 마음의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나는 조금 한기를 느끼며,머플러를 더욱 강하게 감았다.

그 날 열도는 한랭전선에 완전히 뒤덮혀가면서도 전국적으로 맑고,강수확률은 0%.몸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바람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외출하기 좋은 날이었다. 


 가게 앞에서 흐르는 징글벨 테마가 거리에 가득 차,하얀 털장식이 있는 빨간 옷에 하얀 털방울이 달린 붉은 모자-요컨대 산타클로스 차림을 한 메이드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으음,치맛자락이 짧아......춥지 않은 걸까,저러고. 


 "우와와-,귀여운 산타님들이네-.악수 악수." 


 마유리는 산타 코스튬을 한 메이드들에게서 전단지를 받으면서,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까지 했다.마유리도 고양이 귀 모양의 귀도리를 하고 있었기에,얼핏 보면 마치 고양이귀 소녀와 미니스커트 산타의 투 샷으로 보인다.루카코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나에도 순진무구하게 웃는 얼굴로 거기에 끼어든다. 


 "다루,왜 그러지?너는 기념촬영 하지 않는 건가?" 


 "오카링도 알잖아?나는 이런거,싫어해." 


 지긋지긋 하다는 듯이 다루가 대답했다. 


 "응?그랬었던가?이전에는 산타 코스튬에 모에했었잖아?" 


 "그러지 마 오카링......그런 풋풋한 시대는,예전에 졸업했다고.성(聖)스런 날에 성(性)스런 행위에 빠져드는 남녀를 나는 미워해.고로 나는 크리스마스 송도 이 날도 싫어하고 경멸하고 있어.온갖 종파와 승려,수도사,수도녀는 나의 적......" 


 나는 다루의 어깨를 팡 두들기며 격려했다.하지만,역효과였던 듯하다.다루의 동그란 눈이 깜빡거린다 싶더니,순식간에 습기차기 시작했다. 


 "우우,오카링......뭐야 그 내려다보는 시선은!리아쥬의 씀씀이로군요 이해합니다!녀석이다 리아쥬,녀석이 온다!진짜 뒈져버려!" 


 넷을 돌아다니는 일상에 완전히 빠져서,익숙해졌을 그 단어가 오늘은 쿡 가슴은 찌른다. 


 "......리아쥬,인가." 


 나는 쓰게 웃으며,작게 중얼거린다. 


 "틀려." 


 그럴 리 있겠냐(*1).그래,그럴 리 있겠냐.나는 어떤 그리운 말투를 떠올리고는,자기도 모르게 멈춰서서,하늘을 올려다본다.약간 구름이 끼기 시작한 하늘.색채 없는,말라붙은 공허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리아쥬.그건 소중한 존재가 곁에 있는 인간을 일컫는 말이다.지금,내 곁에는-백의를 걸친 몸집 작은 소녀의 형상을 한,부재만이 있다.가슴 속에서 느껴지는,희미한 아픔.괴로운 건 아니야......아니다!결단코 아니다!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기 시작한 나를,느긋한 천연 보이스가 현실로 끌고왔다. 


 "오카리-잉,오카링도 함께 사진,찍자-!" 


 바라보자,마유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아아.....지금 갈게." 


 산타 차림의 메이드와 함께 있는 루카코랑 마유리,나에.이 트리오에게는,좀 화려함이 있다.정신 차리고 보니,가볍게 구경꾼들까지 생긴 듯 하다.어느 틈엔가,거기거기,똑바로 줄 서도록 해,라며 다루가 잘난 듯이 줄 정리같은 걸 하고 있기도 했다.너는 어딘가의 성우사무소 민완 매니져냐.마유리는 하필이면 바보처럼 방긋방긋 하고 있었지만,수개월 전에 코스튬 플레이어로 데뷔는 했지만,아직 주위로부터의 시선에 익숙해지지 않은 루카코는,우물쭈물 하기만 할 뿐.나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불안한건지,그 표정이 점점 딱딱해져 갔다. 


 -그러던 중. 


 "저,저기 너,귀여운데.나랑 함께,사,사진 안 찍을래?" 


 "꺅......!?" 


 나에가 지른 작은 비명이,주위의 평온한 분위기를 바꿨다.보니까,구경꾼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수상한 뚱돼지(ピザ男*2)가 나에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제대로 빗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산발한 머리에 머리띠.맥주통같은 배는,겹겹이 껴입은 방한구로 간신히 파열되는 걸 막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싫어하는 나에에게,더욱 끈질기게 말을 걸려고 한다.정체불명,연령미상.어떻게 봐도 전형적인 씹덕(キモオタ*3)이구만......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이,네-" 

 놈,이라고 말하려던 내 말이 멈춘다. 


 붉은 옷을 입고,커다란 꾸러미를 든 산타 차림의 남자가,말없이 씹덕과 나에 사이에 끼어 든 것이다.살짝 붉은 모자 사이로 금발이 보였다.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다.(*4)근처에서 꾸러미에서 꺼낸 전단지를 나눠주던 외국인인것 같지만,꾸러미가 보자기가 아니라 냅 색 풍인 점이,어중간하게 옥의 티로군.둥그런 안경과 붙인 수염 탓에 인상은 잘 알수 없지만,눈 속에는 부드러운 빛이 감돌고 있다. 


 "뭐,뭔데그래......" 


 원망스러운 듯이 올려다보는 씹덕이었으나,산타는 그저,빙글빙글 웃기만 할 뿐.이윽고 타이르 듯이 검지를 세워서 천천히 좌우로 흔든다. 


 "......칫."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견딜수 없게 된 듯이,혀를 한번 차고는,남자는 서둘러 모습을 감추었다. 
  

 "신세 졌군,고마워." 


 나는 달려가서,산타에게 감사를 표했다.하지만 그는 말없이 "신경 쓰지마"라고 하듯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웅크리고 있는 나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곧 일어나고는,그는 다시 꾸러미에서 꺼낸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한다. 


 씹덕의 분위기 깨는 행동 탓에,얼어붙어 있던 주위의 시간도 다시 천천히 흘러간다.정말이지,멋진 산타로군.감사의 의미도 담아서,나는 산타가 나눠주는 전단지 하나를 받아서,한번 읽어본다. 


 「신점포개점!퓨어 하트 코스프레 카바레 『드림플러그(ドリ-夢フラグ*5)』.명랑회계·서비스최고!오늘 밤,2차원과 3차원이 하나가 된다!」 


 "......" 


 말을 잃은 나에게,옆에서 마유리와 루카코가 말한다. 


 "있잖아,오카링......학생이니까,너무 비싸고 야한 것은,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쿄마씨......사악한 기운에 삼켜지시면 안되요......!" 


 "오카링,이해해......외로운 거구나.괜찮아,나 만큼은 동지라고.마키세씨에겐 말하지 않을 테니까." 


 크리스마스다운,좋은 이야기구나-란 분위기가,무용지물이 되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루가 점찍어둔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아키바의 바다는 나의 바다.아키바 순회라면 나에게 맡겨 두는 것이 길(吉)이야."
 이러쿵 저러쿵 해도 거리의 분위기에 편승한 건지,텐션이 묘하게 상승해 있는 듯하다.그 거대한 등을 쫒아,우리들은 거리를 걸어간다.
 "뭐야,'여기'인가."
 다루가 우리들을 데려온 곳은,역 앞의 8층 짜리 테넌트 빌딩(*1).나에게 있어서는 인연있는 땅이기도 한 그 장소는,거리의 소란스러움에 둘러싸인채,나의 괴로운 기억따윈 전혀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솟아 있었다.내년에는 개장을 위해,일시 폐쇄 한다고 하지만......감개무량함도 무수히 많은 기억도,전부 끌어안은 채,그저 시간은 흘러갈 뿐,인가.좁은 엘레베이터가 만원이었기 때문에,어쩔 수 없이 우리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얼레,이 피규어 어쩐지 마키세씨랑 닮지 않았어?"
 어느 숍 앞.「기간한정」이라는 주의문과 함께,유리 케이스안에 장식되어 있는 미소녀 피규어를 가리키며,다루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음......"
 나도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닮았다.마치 이 세계 밖에서 이 현실을 훔쳐보고 있는 누군가가,그녀의 모습을 이미지해서 조형한 것처럼.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니,하지만 왠지 목덜미가 따끔따금 한 듯한......나는 갑자기,묘한 시선을 느끼고는......
 "네놈,보고 있군!?"
 ......뒤돌아 보았지만,물론 아무도 없었다.아니,왠지 모르게 묘한 그림자가 기둥 뒤로 숨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지만,기분 탓이겠지 역시.

 

 

 

*1:'세계의 라디오 회관'이에요♡

 

 

 


 가볍게 고개를 젓는 나에게,다루가 태클을 걸어온다.
 "......오카링 뭐하고 있어?어라,설마 아까,그 피규어에 넋을 잃은거임?"
 "후후,떠올렸구나.역시 사랑이네.에헤헤~♪"
 "열나-!리아쥬에게 질투.나 말고는 바라보지마!"
 "바......바보같은!그저,세세한 곳까지......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와와-,아름답다니......잘 먹었습니다-아☆"
 "그럼 말야,서둘러 집에 데리고 가 버리는 거임?그리고,옷 벗겨버리는 거임?하는 김에 속옷도 벗겨버리는 거임?우하-,참을수 없어."
 "허......허튼 소리는 그 정도로 해 둬.그 보다 다루여......어째서 이런 장소로 우리들을 데려왔지?오타쿠계 상품 이외의 목적은 없던 거냐."
 "에?아키바의 성지순례라고 하면 역시 스타트지점은 여기잖아,상식적으로(常考)."
 다루,분위기 파악좀 해라.대체 그,야한 책이랑,부자연스럽게 살색 부분이 많은 피규어같은 것도 아무렇지 않게 전시 되어있는 장소라고,여기는......뭣보다,나에에게 묘한 지식을 주입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간,미스터 브라운이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집세를 배로 내라는 것 정도는 말할 것임이 틀림없다.
 힐끔 작은 동물을 바라보니,어떤 귀여운 교복미소녀가 그려진 게임 포스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다행스럽게도 이 포스터,살색 부분은 적은 듯하다.그에 안심한 것도 잠시,타이틀을 보고 흠칫 했다.
 틀림없이 이건......학원제 전날,가볍게 한 괴담 이야기를 계기로,어떤 학생 무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공포체험에 휘말리고 만다고 하는 작품 아니었나.이번 겨울에,피투성이 스플레터&괴기현상으로 점철된 수많은 충격적 전개가 플레이어를 공포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린다고 해서,「진짜 트라우마」라는 둥 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었다.타이틀부터 피를 연상시키는 만큼,위험하기 짝이없다.으음,이건 여자아이의 눈에 들어오게 해선 안돼,절대로!
 "아무튼 여기는 위험해.다른 장소로 안내 하는 거다!"
 내가 강하게 나오자,다루는 기세에 눌린 듯이 대답했다.
 "아,알았어......그럼,다음으로 가자 다음."

 

 

 


 "안냥히 다냐오셨어요,주인님?"
 다음으로 다루가 발을 향한 곳이「메이퀸+냥^2」이었다.아니,분명 다른 장소로 데려가라고 말하긴 했지만......
 천장에 있는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송.애니 송,게임 송 일색인 메이드 카페도,이 시기만큼은 변신 하는 듯 하다.
 "페이리스쨩,안녕-."
 "마유시이,안녕이다냐-."
 마유리와 페이리스가 가볍게 포옹한다.이 녀석들은 알바 동료니까,사이가 좋은 것도 당연한가.
 "몸이 심지붙어 얼어붙어 있어.따뜻한 마실 거를 부탁해."
 다가오는 메이드들에게 각자 방한구를 맡기면서,페이리스에게 주문한다.
 "알겠습니다냐-."
 페이리스는 대답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리들 5명은 제각기 자리에 앉았다.이런 와중에도 나에는 확실히 루카코와 마유리 사이에 포지션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멤버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기다렸다가 나는 날카롭게 말문을 텄다.
 "다루여,이곳으로 우리들을 데려온 이유를 묻지."
 "그게 밖은 춥잖아?우선 따뜻한 거라도 마시면서,살아있다는 느낌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거라고......"
 "이의있음!거짓말이로군.그저 단순히 페이리스의 얼굴이 보고싶었으니까,일텐데?"
 "그,그건......부정 할수 없달까 하고 싶달까.사건의 그림자에는 역시 역시.(*2)"
 "자아자아,오카링,다루군의 기분도 이해해 주자?마유시이는 제법 즐거운 걸?"
 "그래요,오카......가 아니라,쿄마씨.여기는 역시 따뜻하기도 하고......"
 머지않아 페이리스가 돌아왔다.살짝 구부린 손에 올려진 접시에는 컵이 5개 놓여 있었다.
 나는 떫은 커피,다루는 달달한 코코아,루카코는 뜨거운 레몬 티,마유리는 핫 바나나 밀크(「오뎅 캔도 좋은데-♪」라는 둥 얼빠진 소리를 했지만 만족스러운 듯 하다.),나에는......어째서인지 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블러드 오렌지 쥬스를 주문했다......
 음료를 전부 나눠 준 페이리스가,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묻는다.
 "그런데,쿄마들 오늘은 뭐하는 거다냐?냥냥?그러고보니 본 적 없는 얼굴도 있는 듯하다냥.-아가씨,이름 가르쳐줘냐?"
 페이리스는 나에에게 빙긋 하고 웃어보였다.
 "......나에.텐노지 나에......입니다.처음뵙겠습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에 경계심이 풀린 것인지,낯을 가리는 나에도,소곤소곤 자기소개를 해 보였다.
 "뭐라고냥!텐노지라고 하면,그......!?"
 "그렇다 페이리스여.이 아이는 바로,그 미스터 브라운의 영애인 것이다."
 "와......깜짝 놀랐다냥!"
 페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깜짝 놀란 표정이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나에 아가씨를 데리고 아키바 산책을 하고 있는거다.그렇지,어디 재밌는 곳 모르나?"
 "흐-응.그렇다면 좋은 곳이 있다냐!"
 페이리스가 빙긋 웃을음 띄우며,윙크 해 보였다.

 

점내에 들어간 순간,소음과 열기가 우리들을 감쌌다.입구 근처에 2층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늘어서있다.여기는,메이퀸+냥^2 근처에 최근 생긴 최신예 게임센터였다.참고로 페이리스는 「길티 도그즈 네스트」인가 하는 「BL바」같은 곳이 근방에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으나,정중하게 거절했다.나에는 어린애고,만에 하나 나에가 「수」라던가「공」이라던가 「x」라던가 묘한 단어를 기억했다가,아버지 앞에서 이야기 한다면......제 3차 세계대전보다 두려운 일이 될 거라는건 명백하다.


 입구 바로 옆에는 큰 모양의 리듬 게임이 있어서,관광객으로 보이는 2인조 백인이(게다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소매차림!) 북채를 큰북 모양 기체에 두들겨 대고 있었다.에스컬레이터에 타서,2층의 슈팅게임 코너를 지나 3층으로 향한다.여기는 코어한 게이머에게 인기있는 게임센터인 듯하다.겨울방학이라고는 하지만,대낮부터 열광과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맡기고,게임을 한껏 즐기고 있는 청소년들이 잔뜩 있었다.


 오타쿠 문화의 성지·아키하바라의 게임센터는 붐빈다.언제나 전력으로 붐빈다.그야말로 전국으로부터 호적수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맹자들 속에서,풍파에 휩쓸리는 이 일대.게이머들의 레벨은 전부 무서울정도로 높다.사람이 사람을 부르고,열기가 열기를 불러서,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체의 슬릿에 코인을 계속 집어넣는다.


 루카코는 게임에 서투르고,마유리도 당연히 마찬가지.나에의 상대는 필연적으로 나 아니면 다루가 맡게 되는데,나에겐 생각이 있었다.


 "다루여,이 자리는 너에게 양보하지."


 "헤?오카링,이런 때에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잖아?"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사양하도록 하지.자,여아에게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임으로서,멋지게 하트캐치할 찬스이다!"


 "여아와 플레이......서,선보인다......?하트캐치......?좋아 맡겠어!나에땅,좋아하는 게임을 고르도록 해!자아자아,어떤걸로 나와 승부할래?"


 다루가 팔짱을 끼고,콧김을 거세게 뿜으며 나에에게 선언한다.참고로 묘하게 기세등등 하긴 하지만,에로게임 공략 이외엔 다루의 게임실력은 그럭저럭 하는 레벨이다.그리고 물론 나의 목적은,나에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아,네.어디 어디......"


 화려한 전자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에는 한 대의 게임기체에 눈길을 주었다.


 "뭣이!격투게임이라고!?"


 의외로 과격한 선택.그건 월드와이드한 인기를 자랑하며,세계대회까지 열린 적이 있는 초유명 격투게임이었다.


 "......"


 나에는 오도카니 의자에 앉았다.그 순간......이변은 일어났다.어째선지 그녀 주위의 공기색이 변한 것처럼 보인다.그렇다,나에의 표정이 변모하고 있다.고요한 투지와 의지를 숨긴 표정.조금 전까진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생 여자아이였으나, 지금은......마치 전장에 선 병사이다. "나는,한 사람 몫의 전사야." 문득 그런 그리운 목소리가 뇌리에서 리플레인되어,나는 헉 하고 놀랐다.그러고보니,알바 전사한테도 잘 따랐었지......그 때에 뭔가 영향을?하지만 그건,지금은 이미 사라졌을 터인......문득 정신을 차려보니,작은동물이,열기를 숨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


 신 히로인의 숨겨진 루트가 발견된 것도,내가 인기있는 시기에 들어선 것도 아니었다.무언의 압력과 함께,하얗고 작은 손을 내밀었다.


 아,그런 건가.일단 다루에게 시선을 향하자,이 놈,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부는 척 하기 시작했다.나는 어쩔 수 없이 항복 사인으로 양손을 들어보이며,동전 지갑에서 100엔 동전을 꺼냈다.그것을 퐁 하고 나에를 향해 튕기자 나에는 표정도 변하지 않은 채 한손으로 공중의 그것을 받았다.그대로,흐르듯이 슬릿으로 코인이 투입된다.뭐지,이 소녀는......뭔가 들러붙었다고 해야 할까,캐릭터가 변하지 않았나?


 데모 화면을 내보내고 있던 모니터가 타이틀 화면으로 바뀌며,아래쪽에 「1P CREDIT 1」이라고 표시된다.나에가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다루도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캐릭터 셀렉트 화면에서 나에가 고른 건,콜드 슬립에서 깨어난 여자 암살자(*1)라고 하는 설정의 캐릭터였다.학교의 반 하나정도 있는 개성있는 면면들 중,어째서 이녀석을......!?나는 전율했으나,지금은 마유리,루카코와 함께 마른침을 삼키며 승부를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내 오른손이 새빨갛게 불타오른다(萌える*2)!나에땅......나를,평생 잊지 못할 플레이를 하겠음!"


 평소엔 그닥 격투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멋대로 뜨거워진 다루가 고른 캐릭터는......


 "어라,왠지 다루군과 닮았네."


 "정말이네요......일부러 그런 걸까요......?"


 마유리와 루카코가 소근소근 얘기한다.그건,다루와 닮은 체형의 피자돼지 캐릭이었다.


 "푸풋......뭐냐 이 캐릭.이꼴로 정말 격투가인건가?아니면 그건가,게임 설정상 들어있는건가?"


 내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히죽히죽거리자,다루가 흥 하며 콧방귀를 뀐 듯 하다.


 "세상에는 좋은 피자돼지와 나쁜 피자돼지가 있고,이 녀석은 전자인거임.뭐 기다려보라고.엄청난 걸 보여줄거임......여,여자캐릭에게 엄청난 걸,보여줘 버린다.....?끓·어·오·른·다!!"


 "다루 자중해."

 

 

 


*1:...니나 윌리엄스?
*2萌える:모에한다 할때의 그 글자로 불타오르는 거랑은 글자가 다르지만,불타오른다는 의미와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된 듯♡

 

 

 

 

 

 


 "라운드 1.R E A D Y"


 차분한 영어 아나운스.시합개시다.우선은 서로 거리를 두며,간격을 재면서 펀치를 맞춰가는 탐색전.


 그건 그렇고,나에는 실로 깔끔하게 캐릭터를 조작한다.기분 탓인지,레버 조작까지 상당한 수준같은......
 

 결착을 서두르는 건지,다루가 약간 앞으로 나왔다.그 약간의 빈틈을 나에는 정확히 꽤뚫었다.다루의 캐릭터를 오른쪽 어퍼로 띄우고,공중콤보에서 벽콤보,다운 추격타까지 아름답고 완벽하게 들어갔다.


 "K.O."


 놀랍게도,나에가 다루에게 승리했다?어찌 된 거지......혹시 다루놈,살살 한 건가?


 "누후......비기너즈 럭,이란 걸까나?제법 하는 걸,나에땅.하지만 한 번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냐!다음 부턴 진짜로 HELL....지옥이라GO!"


 일부러 일어서서,기세를 높이는 다루.아무래도 분위기를 읽고 살살 한 건 아닌 듯 하다.그럼 대체?


 라운드 2.이번엔 타격전이 되었다.타격을 가드해서 유리한 프레임을 벌고는,반격확정기를 주고 받게 된다.놀랍게도,여기에서도 나에의 승리였다.이상해.뭔가가 이상해.위화감---우리들의 눈 앞에서,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믿을 수 없게도,라운드 3도 나에의 압승이었다.나에는 다루의 공격을 완벽하게 읽어내어,반격기로 흐르는 듯이 반격.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가공격 커맨드를 넣어서,다루가 조작하는 캐릭터의 체력을 0으로 만든 것이다.최후의 일격은 다운 공격 발차기.게다가......「K.O.」표시가 떴음에도 나에는 엎어져있는 피자돼지를 집요하게 걷어차고 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시체차기」---도발과 함께 매너 위반으로 취급되는 일이 많은,더티한 행위다.하지만,나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마치 무언가의 의식인 양 2번,3번 계속해서 걷어찼다.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이걸로 3승 선취.나에의 완전승리였다. 


 "괴,굉장하네......"


 "나에쨩,대체 어디서 연습했던 걸까요......"


 다시 속삭이기 시작하는 마유리와 루카코.아니,연습했다고 할까......천성의 재능?


 인건가?


 크레딧을 잃은 다루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돌아왔다.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으나,그런 다루를 쳐다보지도 않고,시원한 얼굴로 나에는 팔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마유시이,깜짝 놀랐어......"


 "저......놀라는 거를 넘어서,왠지 감동해 버렸어요......"


 마유리와 루카코가 저마다 말을 걸었다.


 "이,이런,바보같은......이 내가......?정말 강함."


 완벽한 샌드백 캐릭터의 대사를 중얼거리며 다루가 헐떡인다.나에는 어떤가 하면,아까까지의 표정은 이미 사라지고,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몸이 움직였어.저 자신도,깜짝 놀랐어요."


 뭐,뭐라고-!!그 순간,눈 앞의 현상을 해명하고자 계속 움직이고 있던 내 뇌리에 한 문장이 번뜩였다. "리딩 슈타이너(*3)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세계선에서,그녀는 마치 게임처럼 나의 몸을 상처입히고,살을 후벼파고......하하,아니,설마 그럴리가.이건 분명 무언가의 우연임에 틀림없어.그래,작은동물은 분명 단순히 게임뇌(*4)인거다......아직 어린데 불쌍하게도......


 나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그 순간.내 전신을 어떤 감각이 휘감았다.진땀이 흐른다.음......이건,징조다......어떤 생리적 현상의.아침에 마신 닥터페퍼 2병과,메이퀸+냥^2에서 마신 커피의 수분이,나의 방광을 압박하고있다.열전에 신경쓰느라,점차 엄습해오는 그 욕구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불각!나는 서둘러,화장실로 갔다.

 

남자 화장실을 나왔다.살 것 같은 해방감.손을 다 씻고나서,문득 생각나서 핸드폰을 꺼낸다. ......수 초후,다시 작게 숨을 내쉬었다.나는,뭘 걱정하고 있는 거지?아니,쓸쓸한 건 아니다.얼마 전에도 내 생일(*1)에 메일이 왔었다.


 나는 크래커로 공복을 달래는 어린애처럼,저번에 그녀가 보냈던 메일을 열었다.거기에는 간단한 축복의 메시지와 연구가 점점 바빠져간다고 말하는 문면. ......그 이래로,메일은 오지 않았다.대략 10일정도......이건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때,뭐라고 해야 할 상황인 걸까.아니,그 연구를 무척 좋아하는 소녀이니만큼,뭔가에 몰두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용솟음친다.후-하하하!내 안의 호오인 쿄마가 웃었다. 이미 그 여자는,너 따위에겐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아무래도,장래를 촉망받는 천재과학자로서,충실한 연구생활을 보내고 있으니 말야.게다가,색기라곤 없는 하얀 가운을 입어도 의지의 강함을 느끼게 하는 그 미모다,그에 상응하는 옷을 몸에 두르면 주위의 남자가 내버려 둘 리 없다고?    시끄러,닥쳐!    나는 억지로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그러나 목소리는 속삭이거나 웃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너 따위는,결국 아키바의 일개 학생이잖아?    하나하나 언동이 뼈아픈,단순한 과대망상증이다.  지킨,다고?   하하,웃기지마!   빛으로 가득찬 길이 약속되어 있는, 그녀의 장래를 함께?  함께 장래를 걸어갈 자격은?    증명은?   로직은?    믿을 수 있는 근거가,어디에 있지?   자아,보여봐라......!


 그만 둬.나는 필사적으로 그 목소리를 지워 없앤다.그만둬......그만둬......!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이윽고 그 목소리는 작아지고,점차 사라져 갔다.


 "후우."


 크게 한숨을 쉬고는 벽에 기대어 섰다.계집애 같군,나도! 여기서 견디지 못해서야 앞으로,어쩌려고!자기자신을,질책해 본다.아프군......이건 아파......

 

 


*1:오카베의 생일은 12월14일이죠♡년도는 1991년♡

 

 

 

 


 그 때,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옆에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걸 알아챈다.텐노지 나에였다.


 "......뭐야,작은동물이잖아.너도 화장실인가.여자용은 저쪽이다."


 대답은 없다.대신 살짝,나에가 눈을 내리깐다.잠시동안,그대로.


 "......?"


 묘하다.이윽고,그 시선이 다시 나를 올려다본다.나에의 커다란 눈동자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모습이,비치고 있었다.


 "저기,오카링 아저씨."


 오빠다,라고 정정하려고 하는 순간.


 "죽여,줄게.오카베·린타로."


 내뱉은 포학한 말과 함께,번득......하고 나에의 커다란 눈동자가 움직였다.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내 뇌리에,악몽의 기억이 고속으로 플래쉬 백 된다.바보같은.......바보같은!꾸불텅......경치로부터 색이 빠지며,현실감이 일그러진다.


 ......그냥,조금 마음이 지쳤기때문에 생기는,단순한 망상이다.그럴 리 없다.


 경치에,색이 돌아온다.변함없이,게임센터의 플로어의 화장실 앞에서,나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나는 금방 긴장감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어이,대체 무슨......"


 내가 먼저 말을 꺼내려고 한 그 직후.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서,오히려 당돌하게.마치 맘 먹고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것처럼.나에는 말했다.


 "저,저기.....쓸쓸하신,가요?"


 "......뭐?"


 "오늘,오카링 아저씨......계속,쓸쓸해 보여요."


 "에?내가......?"


 소동물이 말한 말은 확실히 들렸지만,그 의미를 한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쓸쓸해 보인,다고?


 "아버지와 같은 눈을 하고 있어요......어머니를, 떠올릴 때의."


 이번엔 약간 눈을 돌리고,걱정스러운 듯한 분위기로.


 이건......이 분위기는......신경 써주고 있는,건가?


 "아......"


 내 안에서 직감이 왔다.몇갠가의 사실이 이어져서,하나의 확신으로 변한다.그런가......그런 거였던 건가......


 「관찰당하고 있었다」.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관찰당하고 있었던 거다.이제서야,나는 모든 것을 손에 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나에가 어딘가 어린애답지 않은 태도를 하고,몇번이고 나의 시선에서 눈을 돌리고.수상해 보였던 태도의 이유는...... 나에도 마찬가지로,내 기색을 살피고 있었던 거다.샤이(Shy)한 어린애 특유의 공감력으로,나의 심중을 꽤뚫어 보고,말을 걸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었던 거다.그렇다면, 혹시.....빙그르르하며 두뇌가 다음 추리를 위해 회전한다.


 그러고보면 처음에 나에는,랩은 지루하니까 거리로 나가자고 했었다.그랬음에도,어디로 가고 싶다고도 하지 않았다.그건 어느쪽인가 하면 나에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하......"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온다.이 얼마나 한심한가.이런 가련한 여자아이에게 마음 쓰게 만들다니.


 "하하,하하하하하."


 긴장감이 끊어져서,나는 웃었다.한차례,내 힘없는 웃음이 플로어에 울려퍼졌다.


 "저,저기......?"


 내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한 건지,나에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걸었다.


 "괜찮다,미안......나는 괜찮다. 지금은 그저,자신의 우스꽝스러움에 화가 날 뿐이다."


 나에도 안심한건지,미소를 지었다.나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서 눈 앞의 그녀에게 질문했다.


 "하지만,한 가지는 모르겠군.방금 전의 게임은 대체?"


 질문이 다루를 박살낸 거라고 바로 알아차리는 만큼,역시 눈치가 빠른 듯하다.


 "아아,그 타이틀......게임 센터에서만이 아니에요.요즘,계속 하고 있었으니까.있죠,학교의 친구가 피핀닷마크 포터블을 가지고 있는걸요."


 그러고보면,그건 나에가 스스로 선택한 타이틀이었다.확실히,꽤 마이너한 가정용휴대게임기로 이식도 되어 있었었지.


 "다루아저씨,조금 심하게 놀린 걸까."


 살짝 혀를 내미는 듯한 모습.그러고보면,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인건가...... 그저 어린애라고만 생각했었는데,확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거다.반면,나는......크크,아직아직 수행이 부족한 듯하다.


 "작은동물......아니,텐노지 나에여."


 나는 쓱 오른손을 내밀었다.


 "후에?"


 "고맙다.나는 지금,눈을 떴다.눈 앞을 가리는 안개가 걷혀서,상쾌한 기분이다."


 그렇다,나는 이 여자아이에게 또 한가지를 배웠다.고집부리지 말고,쓸쓸한 자신을 인정하고......신경쓰인다면 솔직하게,이야기하면 되잖아.이쪽에서 움직이면 분명 무언가가 변한다.


 "정말,폐를 끼쳤군......"


 나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머리끈으로 묶은 머리카락 끝이 흔들린다.


 나에는 간지러운 듯 했지만,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감사하고 있다.이 아이에게는.

 

"먼저 마유리들과 합류해 줘.그리고 조금 늦어진다고 전달해 줬으면 해."


 "......응."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전파상태가 좋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거기서 메일을 보내면 되는 거다.한 마디만.


 "건강한가?상황은 어떻지?" 라고 라도.


 그렇다,그러면 된다.그 다음은 세계의 선택에 맡기면 돼......하지만,그 때,나는 아무것도 몰랐었던거다.세계는 의외인 전개와 미래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사실을.

 

 

 

 

 

 

 


 "아,어서오세요......"


 옥상에서 대전게임 플로어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것은 루카코의 인사였다.


 "나에는 어딨지?"


 그렇게 묻자,루카코는 깜박깜박 눈을 깜박였다.


 "나에쨩,아직 오지 않았나요?"


 "응?아니,나는 이쪽에 합류 하라고 지시했을 터인데."


 "어라?틀림없이 쿄마씨와 함께 있다고만."


 "뭐......라고!?"


 마유리&다루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덜컹,하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렸다.불안의 먹구름이,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텐노지 나에님, 텐노지 나에님, 일행 분이 와 계십니다.2F의 카운터로 와 주십시오-.』


 -결국, 1시간 정도 지나도 나에는 돌아오지 않았다.루카코에게 몇번이나 랩에서 교환한 번호로 전화 해 보게 했지만,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벨 소리가 들린 후,전원이 켜져있지 않거나 전파가 닿지 않는다 라고 하는 메시지가 흐르면서 부재중 통화가 되어 버린다.몇번 시험해 보고는 나에의 베터리가 조금 걱정되어서 그것도 그만두었다.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미스터 브라운이 줬던 핸드폰이 충전이 잘 되어 있을 거란 보증은 없다.미스터 브라운과 모에카도,마찬가지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역시......언제라도 연락 받을 수 있는 간단한 일이라면,소중한 나에를 맡기고 갈 리가없다,라는 생각은 들었었다.


 지금은 점내방송으로 부르고 있는 중이다.그럼에도 나에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곤란하게 됐네요......"


 루카코는 눈썹 끝은 기울여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뭔가,안 좋은 일......"


 에라도 휘말린게 아닐까,라고 말하려고 했던거겠지.루카코는 헉 하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난 지금 상당히 조급한 표정을 짓고 있을 터이다.다루가 서둘러서, 열려있던 휴대폰을 닫았다.


 힐끔 보였던 화면에는, 야후의 인터넷 뉴스가 비치고 있었다.


 「아키바에서 또 소아유괴.러시아계 조직이 관계?」라고 하는 센세이셔널한 문구가 커다란 폰트로 큼지막하게 비치고 있었다.


 -예의 어린이를 전문적으로 노리는 유괴조직의 소문도 있고,이 근처도 뒤숭숭하지까 말야-


 머릿 속에 미스터 브라운의 말이 리플레인된다.그 때는 적당히 흘려들었었는데-


 막상 자신에게 문제가 닥칠 때까지,위험을 실감하는 건 어렵다.우리들은,이 고도정보화사회에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서 되려 야생 동물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 때, 루카코가 흠칫 몸을 떨었다.


 "왜 그러지?"


 "저기......전화,같아요."


 "뭐!루카코여,빨리 받는 것이다!"


 루카코는 주머니에서 급해 핸드폰을 빼고는,플랩을 열었다.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 하거나 하는 모습이,정말 애이 탔다.


 "......엣?왜,어떻게 된 거야?나에쨩,지금 어디에 있니?"


 가슴이 경종처럼 두근거린다.무척 나쁜 예감이 든다.그리고 나의 나쁜 예감은,어째서인지 굉장히 높은 확률로 곧잘 적중해 버린다-.


 "루카코여.우리에게도 들릴 수 있게끔 통화음량을 최대로 해 줘."


 "아,네......!"


 루카코는 핸드폰을 조작하자,가-앗,하는 정전음(靜電音)이 주위에 울린다.


 "-와줘!루카 언니!나,정신을 잃어서-지금 정신을 차렸어!아빠의 핸드폰은 연결되지 않아서......나,지금,어딘가에 갖혀있어!도와줘!"


 비통한 목소리.우리들은 무심결에 얼굴을 마주봤다.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여기,어딘가의 호텔 같아.아빠랑 함께 데스티니 랜드에 갔을 때,묵었던 곳이랑 닮았어."


 "호텔,이라고!?뭔가, 표식은!?"


 "책상 위 잿떨이에,마크 같은 것이......6과 9?으응,P와 D?그런 기호가 찍혀 있고......방 번호는 31-앗,싫어,뭐하는 거야!돌려줘,돌려-."


 뭔가,싸우는 듯한 소리.뚝 하고 귀아픈 소리를 남기고 전화는 침묵했다.


 "루카코!서둘러서 다시 걸어봐!"


 "......안 되요,연결되지 않아요......"


 루카코는 이미 완전히 울상이 되었다.


 "큭......"


 나는 이를 갈았다.


 머릿속에 2개의 숫자를 떠올려본다.6과 9?   그리고,P와 D?   그런 기호와 관련된 시설이 있었던가......?
 

 "남녀의 비밀스런 일,그것은 식스나이-"


 "이 HENTAI놈이!"


 "꾸엑."


 내가 날린 철권을 복부에 제대로 먹고,뒤로 뻗는 다루.


 "지금은 비상사태다,자중 좀 해!"


 "솔찍히 미안했음."


 "6과 9......69층 아니면 96층?P와 D는 호텔의 이니셜같은 건가......?"


 "69이상 층이 있을 거 같은 건물,아키하바라 어디에도 없어요......"


 내 말을 듣고 루카코가 고개를 갸웃한다.


 장난스런 태도를 버리고 진지한 표정이 된 다루가 끼어들었다.


 "6과 9는 그렇다 치고,P와 D가 어딘가의 호텔의 이니셜이거나 약칭일 가능성은 있을 듯함.빨리 검색해 볼게."


 익숙한 손놀림으로,재깍재깍 핸드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손까락도 두꺼운 주제에,역시나 빠르다.나,마유리,루카코는 지그시 그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몇 분후.


 "......안 돼,모르겠어!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론 어려움!"


 다루는 팔짱을 끼고선 말없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으음......"


 낙담한 그 순간,마유리가 외쳤다.


 "아!그거......어쩌면,저어 저어,그게 아닐까나-."


 정말 답답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지?"


 "발상을,바꾸는 거야.숫자가 아니라,그림으로 생각해 보는거야-."


 "그림?"


 "저기저기이-"


 마유리도 핸드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다루정도의 속도는 없어서,조금 굼뜨......지만,이윽고 겨우 찾던 페이지를 발견한 듯,우리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이거야,이거-!"


 거기에 비치고 있던 것은-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깡마르고 길쭉한 개구리 모습을 한 마스코트였다.배에는 백과 흑의 도깨비불 2개가 뒤얽혀 있는 듯한 묘한 마크가 그려져있다.


 "음양 게로카에룬(*1)......?"


 그것은,이 마스코트 붐이 종언을 맞이하기 직전,양초의 최후의 불꽃처럼, 무진장 팔려댄 최후의 바리에이션의 하나였다.하지만 이 마크,뭐였더라?


 "그런가......태극도로군요?"


 손뼉치는 루카코.


 "음양도의 근원을 나타내는 도형이에요.만물은 음과 양 2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어요."


 "어쩌면 말인데,나에쨩은 이걸 보고 『6과 9』『P와 D』라고 말했던 게......?"


 "6과 9......P와 D......"


 그렇게 들어보니......확실히 엃혀있는 두개의 모양은 6과 9로도 보이고,소문자 P와 D로도 보인다......하지만,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게다가,어떻게 해서 조사하지?


 마유리의 추측에 의하면,태극도는 호텔 로고의 이미지를 비약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다시 말해,그건 개인적인 상상력의 바이어스가 걸린 결과 생성된 이미지다.말하자면 「하얗다」와「하늘에 떠있다」로 「구름」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구름을 본 개인이 상상한 이미지인 「기린」이나「단팥빵」을,「하늘에 떠 있다」와 병용해서 검색한들,정확하게 「구름」의 정보를 끌어 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게다가 「태극도」는 조금 특수한 용어로서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넷으로 잠깐 복잡한 검색을 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치.「태극도」「호텔」을 기초로 여러모로 시험해봐도,유력한 정보는 끌어 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나는 결단하고,방침을 정했다.우선 경찰에 전화.그리고나서 직접 거리를 달리며 구석구석 호텔을 찾아 흩어져서 찾아본다...... 물론 외견이나 로고를 검색할 수 있는 건 검색으로 확인작업을 계속한다. 이건 결코 지적이지 않은,최저최악으로 비능률적이며,어쩔 도리가 없는 선택이란 건 알고 있다.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육체를 쓰는 걸로 최악의 사태에서 변명할 거리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래도 좋다.단지 여기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다.

 

 ......그리고나서,몇 시간이 흘렀다.다루는 넷 검색을 계속 하고있었다.일하는 중인 페이리스가 도와주겠다고 제의한 것은 거절하고,대신 집사 쿠로키씨의 협력을 부탁했다.마유리와 루카코와 나는 흩어져서 거리 탐색을 했다.


 "안되겠어..."


 건밤 카페 앞에서 나는 숨을 돌리고 있었다.납덩이 같은 피로감에 몸이 뭉개질 것 같다.그렇더라도,늘어질 것 같은 육체를 꾸물꾸물 일으켜,다시 걸어간다.높은 곳에서,거리를 확인해보고 싶다......아카하바라 UPX 앞 육교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에 간신히 몸을 맡겼다.하지만,육교 위에 도착한 시점에서,체력의 한계가 왔다.


 UPX앞 브릿지의 난간에 매달려,허리를 숙였다.육교 저편에 겨울의 아키하바라의 흐린 하늘과,그것을 베어버릴 듯이 솟아있는,몇 채의 빌딩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건......이 광경은......?"


 나는,떠올린다.아아,그 때는 석양이 예뻤었다.


 돌연.


 핸드폰 착신음이 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잃어버린 여름의 기억이 덮쳐온다.
 

 환영과도 같은,곁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그리고......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런 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얼굴을 들면,손을 옆구리에 대고,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쭈그리고 있지 말고,일어나.』


 기가 센 눈동자.의지가 가득 찬 시선.


 하하......오랜만인데도,엄격하군.하지만,지금의 나는......


 『저기......』


 한순간 목소리가 희미하게 불안해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힘 낼 거잖아?이런 데서,내팽겨치거나 하지 않을 거지?힘내고 힘내서......이번엔 자신이,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녀석이 될 거라고......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어느새 목소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처럼,가느다랗게 변해 있었다.그 우울함을 삼키고 있는 슬픈 음색은,잃어버린 추억 속의 그녀를 생각나게 한다.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려 비를 피하러 들어간,어둠침침한 층계참에서의 그녀를.


 『오카베......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실제로는,겁쟁이인 나는 그런 결의를 입 밖으로 내지조차 않았다........그러니 이것은,환영.이 얼마나 형편 좋은 전개냐......나는 무심결에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하지만......하고 나는 생각한다.환영이라도 좋다.형편 좋은 전개라도 좋다.그것이 실제로 힘이 되기만 한다면......

 

 그런 거다.마음은 때때로,현실을 능가한다.사실이나 증거따윈 하나도 없을 때 조차 힘을 낳는다.그러니까.


 나는 오른손으로 몸을 지탱하며,다리에 힘을 넣는다.


 천천히......시선이 올라간다.


 내 양다리는,아직 존재한다.이 신체는,아직 움직인다.


 『그래그래.등 쭉 펴고 꼿꼿이 서.』


 그러니까,아직......모든것을 내팽겨 칠 수는 없다.


 나는,완전히 때가 탄 코트와 백의의 소매를 걷었다.


 일어선 나의 시야에 UPX의 거대한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미래를,믿읍시다."


 허울 좋은 싸구려 캐치 카피.뭔가,정부관청계의 광고CM인건가?


 후후,얄궂은 말이다.아무리 도전하더라도,현실 앞에서 무력함을 깨닫게 되는 일도 있다.실제로 나는 이 거리에서 잃어버린 어린애 한 명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그건 거대한 세계 앞에서는,대개 극히 작은,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호오......고작 CM 주제에 나의 심리를 먼저 읽고 있어.제법인데.


 "결과는 대체로 절망적입니다.진절머리 나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이를테면,99% 정도는 쓸모 없을 겁니다.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진다면,세상에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을겁니다."


 뭐냐,이 묘하게 서글서글한 말투의,친근한 느낌의 CM은?


 "그렇더라도,믿읍시다.미래를,믿어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은,이어져 있다.그런 말을 남기고 CM은 다음 신작 애니의 CM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새로운 SNS인가 뭔가의 선전이었던 듯 하다.


 우리들은,이어져 있다,인가......


 이어져 있다......?

 

 

 

 

 

 

 다음 순간,모든 소리가 사라졌다.내 머리속에 전광같이 번뜩인,혁신적인 구상.


 아아,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녀석인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그렇다.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면,그녀의 힘이 필요불가결하다.전화가 연결 될 때 까지의 몇 초가,영원처럼 느껴진다.계속 되는 벨소리.이윽고,특징적인 달콤한 목소리의 말소리에 대답했다.


 "페이리스여.부탁이 있다......미안하지만,10분만 시간을 줘."
 

 

 

 

 

 

 

 그리하여,고여 있던 시간은,세계는,다시 흘러갔다.

 

 아키바의 유명인·페이리스가 쓴 「트위타이터」로의 정보제공요청.신뢰할수있는 사람 한정 공개라고는 하지만,그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가장 유력한 정보를 제공한 것은,놀랍게도 「검은 절대영도」 4℃(시드)였다고 한다.


 어디서 알았는지,"적에게 소금을 보낸다......그것은 진정한 강자의 증거.그 명장 한니발도,그렇게 해서 레젼드를 만든 거다."라고 큰소리 치며,바이럴 어택커즈의 부하들을 써서,호텔의 정보를 모아, 일방적으로 보내준 듯 하다.애초에그 고사는 한니발이 아니라,전국무장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키하바라역에서 조금 떨어진,칸다방면의 골목길에 있는 낡고 작은 호텔.나에가 남긴 「31」이란 말의 단편으로부터,3층일거라고 짐작한 우리들이 그 방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꽥!"


 몸싸움 결과,그리 위력도 없는 나의 철권과 다루의 몸통박치기를 동시에 받고,벽까지 날아간 외국인 거한은,코피를 흘리며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한 숨 돌리자,뒤에서 요도 사미다레와 『사리움 세이버』를 들고 있던 루카코와 마유리가 동시에 외쳤다.


 "아-!이거 『라이넷 카케루』의,히카리쨩 코스튬이잖아-!"


 "게다가,저번달에 처음 등장한 신 버젼도 있어요!?"


 "뭐?"


 과연,확실히 바닥 한쪽 면이,애니 미소녀가 입을 것 같은 의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람......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는 타월을 얼굴에 갖다 대서......정신이 들고 보니,그 의상을 억지로 입히려고 해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끊어진 건지,나에는 마유리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그럼에도 떨지 않고,똑바로 말했다.


 낭패감에 나와 다루는 얼굴을 마주보았다.바닥을 자세히 보자,의상과 섞여서 사진도 대량으로 흩어져 있었다.여성 코스플레이어와 사랑스런 옷을 입은 여자아이만 골라서 찍혀있는 듯 한데......


 "혹시."


 "나도 감이 왔음."


 "이,이 녀석은 외국 유괴조직의 인간 같은게 아니라......?"


 "중도의......글러먹은 오덕 외국인인거임?"


 좀 더 주변을 살펴보자,침대 위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다.벗은 채로 놓여진 빨간 산타 옷,붙임수염에 둥근 안경.냅 색 풍의 주머니......그리고 여러 장의 전단지.


 "음......"


 맞추어져가는 퍼즐조각.내 안에서 모든 것이 맞춰졌다.


 "과연,미니 촬영회 때의 그 산타인가......"


 "그럼,나에땅을 씹덕한테서 구해낸 것도......?"


 다루의 말에,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아마도 자기가 먼저 작은 동물을 점찍어 뒀던 거겠지.시기가 시기니,산타 코스튬을 하고 있으면,거리에서 대놓고 여자아이와 접촉을 해도 의심 받는 일은 없어.알바하는 겸인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머리 잘 썼군......"


 정신을 잃은 나에를 빈 꾸러미에 집어넣고,데리고 가는 남자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관심이 가라앉은 후 의상을 벗고 단순히 냅 색 풍의 꾸러미를 든 일개 외국인 관광객으로 변신,이란 건가.


 "......히긱!"


 돌연,의식을 잃었을 터인 거한이 기성을 질러서,우리들은 깜짝 놀라 그 쪽을 봤다.


 -전율이,일었다.


 눈물을 닦은 나에가,말없이,남자의 가랑이 사이를 걷어차고 있었다.두번,세번......움직이지 않게 된 사내를 집요하게 계속 걷어찼다.고기가 꽉 찬 가죽주머니를 두들기는 듯한 그 소리는,호텔 방에 산뜻하게 계속 울려퍼졌다......

 

"그러면,크리스마스 이브를 축하하며."
 

 나는 컵을 높이 들어올렸다.


 "건배-!


 랩멤버들이 합창했다.챙,하고 글래스를 부딪히는 소리.그리고 나서,딸랑딸랑......얼음과 글래스가 부딪히는 음색이 이어진다.


 테이블 위에는 치즈와 크랙커가 담긴 쟁반,견과류와 과일을 담은 그릇,샴페인과 글래스,그리고 어쨰서인지 칠면조와 함께 도넬케밥을 담은 접시가 놓여 있었다.


 벽을 가득 메운 호랑가시나무 가지와 색지.결국 크리스마스 트리만은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건 사소한 일이다.마유리가 웃고 있다.다루가 칠면조를 뜯어 먹고 있다.루카코가 모두에게 샴페인을 따라주고 있다.일이 끝나고 합류한 페이리스가 과일과 케이크를 잘라서 나눠주고 있다.모에카가 살짝 미소지으며 글래스를 기울이고 있다.미스터 브라운이 장난스럽게 팔에 만든 알통에 나에가 매달려있다.잊지않고 보관장소에서 꺼낸 랩멤버 008의 핀 뱃지도 내 가슴에서 빛나고 있다.


 "이런이런,엄청난 하루였어......"


 글래스의 얼음을 바라보면서,혼잣말을 했다.


 그 후-남자는 경찰에게 끌려갔고,사정청취는 페이리스의 힘이 작용한 건지 극히 단시간에 끝났다(그렇지 않았다면,우리들은 지금쯤 이렇게 평화롭게 이브를 맞이할 수 없다).사건자체도 일이 커지지 않도록 페이리스가 손을 써 준 듯하다.


 녹초가 되어서 랩에 돌아오자,마유리가 제안했다.지독했던 하루를 메우기 위해,하루 일찍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고.


 우리들은,기본적으로 하루를 리듬과 활기와 텐션으로 살아가는 인종이다.다루는 다소 귀찮은 듯 했지만,최고의 피해자였던(?) 나에가 강하게 희망했기 때문에,결국 모두 이 안에 찬동했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됐었기 때문에,마유리가 서둘러 랩의 장식을 했다.루카코와 나에는 긴자에 있는 백화점 지하까지 케이크를 사러 가고,나와 다루는 칠면조 구매를 담당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있자니,때마침 미스터 브라운과 모에카도 돌아왔다.나는 아예,정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야 할까 망설였으나,나에가 시선으로 그걸 말렸다.모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이기 때문인 듯 하다.흐음,그렇다곤 해도 이 여자아이,상당하군.나중에 온 페이리스도 역시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연히 핸드폰을 두고 갔었다고 말했지만,진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역시 외출은 SERN에 관련된 임무이며,임무수행 중에는 동료끼리만의 기기로 통신수단이 바뀌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하지만 미스터 브라운은,돌아오는 도중에 몇번인가 걸려온 착신이력을 알아챈 듯,큰 걸음으로 랩에 들어오자마자 얼굴 색을 바꾸고 나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나에는 냉정하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 했던 거다,라고 발뺌했다.우리들도 나에가 외로워 해서 큰일이었다,역시 위대한 부친은 뭔가 다르다,라며 말을 맞추고는,파티를 하루 빨리 하는 것도 나에와 미스터 브라운을 위해서인 것으로 해 두었다.


 결국, 그걸로 미스터 브라운은 더 이상 뭐라 하는 일 없이 얼굴을 풀고,간단히 구워삶아졌다.정말이지 팔불출이란 건 고마운 것이다.하지만,모에카는 빤히 나를 바라보더니,갑자기 핸드폰에 손가락을 가져가서 상당히 당황했다. ......하지만 그 직후,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아무래도 직접 물을 수 없는 일은,메일로도 묻지 않기로 한 듯 하다(이 순간 만은,신 능력 『리딩 에어』를약간이나마 몸에 익힌 듯한 섬광의 지압사에게,건배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덧붙여,아무래도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조기에 일은 완료된 듯 했다.그런 김에 미스터 브라운은 초콜릿 케이크,모에카는 어째서인지 도넬 케밥을 선물로 들고 왓었기 때문에,음식이 무지 많아졌지만..... 뭐,결과 OK란 거겠지.행복한 듯이 입을 움직이는 다루와 마유리를 보면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즐거운 시간일수록,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법이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여기에서도 확실하게 기능하고 있었다.머지않아,연회도 절정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혼자서 슬쩍 밖으로 나왔다.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와,「임시휴업!」이란 종이가 붙어있는 셔터를 내려둔 브라운관 공방 앞을 지나간다.훌쩍 큰 길 쪽으로 몸을 향한다.


 아키바의 거리는,내일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일색이었다.


 시선을 올려다보았다.푸른 색에서 짙은 푸른 색,그리고 쪽빛의 그라데이션.밤하늘에는 남보라빛으로 물든 구름이 떠있다.구름 틈으로 보이는 엷은 빛이,아련한 빛으로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밤이 팔을 펼쳐,지상을 품으려 하고 있었다.


 거리의 등불에 어린애인지 누구인지가 매달아 둔 것 같은 전나무 모양의 램프가 눈부시게 빛난다.빨간 코의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 탄 산타의 미니츄어가 빛에 비치어 살짝 흔들리고 있다.


 "......"


 거리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하나가 된 신비하고 장엄한 풍경.내뱉는 숨은 하얗게 하늘로 떠올랐다.문득,이 경치를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생각하고 말았다.


 "......자중해라,호오인 쿄마씩이나 되는 녀석이."


 쓴 웃음 짓는 나에게,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카리-잉!"


 랩의 창문에서,마유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케이크,다 잘랐어-."


 "아아,지금 간다."


 "알-았-어."


 마유리의 얼굴은 곧 들어갔다.지금부터,계속해서 이어질 즐거운 시간이, 다시 한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한가지-이 크리스마스에는 딱 한가지, 빠져 있는 게 있다.물론 그것은,크리스마스 송을 부르는 것도,인생찬가로 가득찬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라-

 

 

 


 갑자기,부르르,하고 휴대전화가 바이브레이션했다.메일 착신을 나타내는 램프의 명멸.나는 메일을 열었다.

 

 

 


-------------------------------------------
TO 오카베 린타로     

FROM 조수

제목:Merry Merry Christmas!


오카베에게.

메일,고마워.
하지만 어떻게 된 거야,그쪽에서 보내다니
별일이네ㅋ
흐음...조금 쓸쓸했던 걸까,
오카베 린타로 군?ㅋ

난 건강해.이제 곧 이 곳도
일단락 되니까.그럼.


P.S.
일주일 전에 보낸 편지,
잘 받았어?
--------------------------------------------

 

 

 

 가슴 속에, 따뜻한 등불이 켜졌다.보고있는 동안 그것은,안타까울 정도로 온도를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발을 옮겼다.요 몇일간,우편물이 박혀있는 채로 내버려 둔 우편함을 향해 달렸다.


 살랑,시야 한쪽을,하얗고 예쁜 것이 지나갔다.바람에 날려서 아스팔트에 떨어졌다.작은 무늬를 남기고서는 녹아 사라졌다.


 "......눈,인가."


 하늘을 올려다본다.강수확률 0%라는 예상은,간단하게 배신당했다.정말로,굉장히 간단하게.이 세계는,랜덤성과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올해 최후의 눈이 되겠지.틀림없이 쌓이진 않을 테지만......찰나의 눈이 나를 감싼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듯 하지만,우리들 랩 멤버의 일상은,틀림없이 그럭저럭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팬픽,웹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액강탄의 홀리데이 -크리스의 편지-  (0) 2020.10.02
요원의 발할라  (0) 2020.10.02
승인공명의 파든  (0) 2020.10.02
승인공명의 수버니어  (0) 2020.10.02
밀약의 세라피  (0) 2020.10.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