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웹소설

요원의 발할라

rennes 2020. 10. 2. 15:35

세계선 변동률 0.334581%

 

시나리오: 하야시 나오타카

「강대한 권력으로부터의 도피행」이라는 건, 서툴긴 해도 역시 써나가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더욱이「거대한 폐쇄공간」으로서의 SERN의 LHC터널이라는 무대도, 그것만으로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당초엔 3만자의 예정이었습니다만, 어찌어찌 힘내서 4만자까지 내용이 불어버렸습니다. 참고로, 라스트신에서 등장하는 코스플레이어양은, 그 후, 26년 후의 타임트래블러의 이야기와도 관계되어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코믹스「망환의 리벨리온」봐주시길♬

 

삽화: 아야쿠라 쥬우

처음 뵙겠습니다, 아야쿠라 쥬우라고 합니다. 「슈타인즈·게이트」는 저로선 드물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단숨에 클리어해버릴 정도로 빠졌던 게임이었기에, 일러스트를 그릴 기회를 얻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작업 중, 극중의 신을 떠올려서, 그 세계선의 미래는 이렇게 되는구나하고 조금 슬픈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그렸던 오카링, 크리스는 당연하고, 개인적으로는 마유리와 스즈하도 맘에 들었던 터라 그녀들도 부디 어딘가에서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발할라】

--북유럽신화에서 주신 오딘이 있는 궁전의 이름.

 

[21, DEC, 2011 AM 11:31]

 

1년 반 만에 보는 그녀는 차가운 모습으로 사람을 접근치 못하게 하는 오라를 두르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 그 모습은, 그 시절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게 했고, 그렇게 만들어버린 책임의 일부는 나 자신의 실책에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한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12월 유럽의 냉기는 누구나 외출을 꺼릴 정도. 그 와중에도 그녀는 실외 테라스 한쪽에 있는 벤치에 등을 쭉 펴고 앉아 있었다.

SERN의 프랑스쪽 부지 내에 있는 아파트풍의 세련된 건물.

그 3층 테라스에서는 다른 연구시설에 둘러싸인 탓에 주변의 한가로운 전원풍경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밑으로 보이는 안뜰에도 사람의 모습은 없고, 시들어 잎사귀를 떨군 나무들 탓에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세계 최고급의 소립자 물리학 연구소. 하지만 분위기는 일본의 대학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듯 먼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목소리를.

그녀의 몸짓을.

확실히 떠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줄곧 재회하고 싶었다.

1년 반만이다.

생각해보면, 함께 지낸 건 고작 2주미만. 그러니 떨어져있던 시간 쪽이 훨씬 길다.

그럼에도, 그녀는 소중한 나의 동료 중 한사람이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 후 난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 옆에 섰다.

「에……?」

흠칫 몸을 떨더니 그녀는 나를 알아챘다.

눈이 마주친다.

놀라게 하는데 에는 성공했다.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조수여--」나는 굳이 그 호칭을 사용했다.

「오랜만이군」

「오카베, 너…… 어째서……」

마키세 크리스는 얼떨떨해하며 벤치에서 등을 뗀다.

「널 데리러왔다」

「……」

크리스는 말문이 막힌 듯하더니,

「풋……」

이봐,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째서 갑자기 웃는 거냐!

「폼 잡기는. "중2병 수고"하네……. 1년 반 만인데도 여전히 호오인쿄우마하고 있는 거네」

「내 진명을 멋대로 조동사로 쓰지마라」

게다가 이래 뵈도 호오인 쿄우마 모드로 돌아온 건 극히 최근이다. 다시 말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소리다. 지금도 실은 계속 떨리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생각하면 다리가 풀리려한다. 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크리스에겐 보이지 않는다.

「……조수, 인가」

쓸쓸한 듯이, 그녀는 쓴웃음을 짓는다.

「너에겐 그 당시 여러 별명으로 불렸었지……. 크리스티나라던가, 좀비라던가, 제대로 불린 적은 없고. 지금, 너한테 듣고 싶은 게 잔뜩 있는데…… 어째서, 그런 어찌 되도 상관없는걸 떠올려 버리는걸까……」

「너에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사과하지 마」

크리스는 살짝 어깨를 떨더니 일어서서, 나를 똑바로 본다.

한걸음씩, 확인하듯이, 내게 다가온다.

「있지 오카베. 난…… 지금도 라보맨일까?」

「당연하잖아」

「다행이다……」

그러더니, 돌연 크리스는 얼굴을 마구 일그러트리며 내 품에 매달려왔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어……」

그런 크리스의 가는 몸을 꽉 끌어안는다.

그녀의 따뜻함을, 그곳에 그녀가 있다는 현실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싶기에.

크리스의 몸은 추위 탓에 싸늘히 식어있었다.

「너나 하시다는 이미 죽은게 아닐까하고……」

「데리러오는게 늦었구나」

「그러니까 하나하나 폼 잡지 말라니까 이 중2병……흐윽……」

「크리스티나……」

「우, 운건 아니니까 말이지!」

어떻게 봐도 울고 있었다.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

하지만, 옛날처럼 그걸 순수히 놀려먹는건 지금의 우리들에게 불가능했다. 결정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지적 호기심만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과는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재회를 기뻐하고 있을만한 여유는 없다.

「크리스티나 여기서 빠져나간다」

「빠져나간다니, 어디로-」

「말했잖아. 널 데리러왔다고」

「그럼, 정말로……?」

「SERN탈출 작전. 코드네임, 작전명"발할라<천국에 이르는 길>"다. 함께 아키하바라로 돌아가자, 크리스」

 

 

 

[21, DEC, 2011 AM 11:36]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1년 반 전.

평범한 대학생이던 나에게서 일상을 빼앗겼던 날.

--그 때의 총성을, 지금도 환청처럼 들을 때가 있다. 나의 소중한 "인질"은 그렇게 머리를 꿰뚫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됐다.

--그 문자들을, 지금도 눈앞에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실패했다"라고 하는 절망으로 가득찬 편지를 받아든 나는, 세계의 의지가 얼마나 잔혹한 결말을 바라고 있는지 알게 됐다.

어느 쪽도 그렇게 되도록 인과를 일그러뜨려버린 자업자득. 알고는 있지만, 불합리한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1년이 걸렸다.

소중한 동료가 두 명, 나의 섣부른 행동 탓에 희생됐다.

그중 한사람은 나의 "인질"이었고.

또 한사람은 미래에서 온 "친우의 딸"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눈앞에 두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다.

SERN.

2034년에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해 세계에 디스토피아 사회를 구축하게 되는, 소립자 물리학 연구소. 300인 위원회의 직속 기관. 마유리의 원수. 스즈하의 적. 우리들을 감금한 장본인.

모든 것은 우리들이 우연히 타임머신을 만들어버린 것에 기인한다.

그 사실은, 똑같이 극비리에 타임트래블 연구를 하고 있던 SERN의 비공식 하부조직 라운더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2010년 8월 13일. 우리들이 라보라고 부르며 집결지로 사용했던 아키하바라의 한쪽 구석 잡거빌딩 방으로 녀석들이 습격해왔다.

그리고 마유리가 총에 맞았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존·타이타"이며 2036년에서온 타임트래블러였던 아마네 스즈하와 협력해서 미래 그 자체를 완전히 바꾸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

스즈하는 서기2000년에 자살.

나는 스즈하의 추억들을 소거하는 D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하지못한채.

몇 번인가 타임리프머신을 사용해 발버둥 쳤지만, 그것도 헛수고로 끝났다.

내가 "포기해버린"탓에 미래는 개변되지 않았고, 마유리는 또다시 머리를 꿰뚫려 죽었다.

타임머신은 빼앗기고, 우리들은 라운더에게 붙잡혀, 이 SERN에 연행되었다.

나와 다루<하시다 이타루>는 크리스와는 다른 장소에 감금되어, 서로가 무사한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1년 반이 지나있었다.

너무나도 긴 1년 반이었다. 하지만 슬슬 끝내야할 때다.

다이버전스<세계선 변동률> 0.334581%

그것이 내가 아키하바라를 떠나기전 관측한 세계선의 수치였고, 그 후 한 번도 리딩 슈타이너는 발동하지 않았다.

 

 

[21, DEC, 2011 AM 11:47]

 

크리스가 있던 시설은 외관은 세련되었지만, 내부는 마치 격리병동이었다.

창문에 철창이 있지는 않았지만, 크리스에게 배정되있는 방의 천장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있었다.

 

프라이버시는 완전무시라는 이야기다. 물론 나와 다루가 있던 다른 시설도 비슷한 상태였다. 다루는 「바닥딸조차 할 수 없다니 웃기지마-!」라며 항상 탄식했을 정도였다. 오히려 네녀석이 웃기지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크리스를 데리고 테라스가 있는 3층에서 1층까지 달려 내려왔다. 1층 복도에는 컴퓨터로 잠겨있는 철창 게이트가 있다. 그건 지금 개방된 상태였다.

「오카베, 이건……」

철창을 빠져나가려할때, 크리스가 내 손을 떨쳐내고 멈춰섰다.

새파래진 표정. 시선은 철창의 바로 옆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엔, 건장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24시간태세로 교대근무하고 있는 경비원이다. 게이트의 록은 이 경비원이 가지고 있던 열쇠를 빌렸던 것이다.

「네가 한거야……?」

「잠들게 만든 것뿐이야」

"나는 라운더와는 달라"라는 의지를 담아 차갑게 대답했다.

이 남자는 매일 반드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커피 서비스를 받는 다는 사실을, 한 달에 걸친 뒷조사로 알아냈던 것이다. 그 다음엔 거기에 수면제를 슬쩍 타놓는걸로 끝이었다.

「그보다 서두르지. 슬슬 라운더 녀석들이 이변을 눈치챌거다」

녀석들은 크리스의 방에 있는 감시 카메라로 언제나 엿보기 행위를 하고 있을 터이다. 아무래도 크리스가 계속 돌아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

「라운더……」크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여기에도 있는건가. 있겠지, 물론.」

「우리들을 이리로 끌고 왔던건 녀석들이었으니 말이지」

「하시다는? 지금 어디에?」

「걱정마라. 녀석은 여전히 HENTAI야. 이 작전을 꺼낸 것도 다루였으니 말이지」

「그 녀석이 오카베보다 의욕을 보이다니, 의외네」

「올해 코믹마켓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고 싶어, 라는게 동기다」

「굳이 말해두지. 쓰레기라고」

여전히 크리스는 나나 다루에게 용서가 없구만. 즐거워져버린다. 딱히 진성M이라는 건 아니라고.

로비를 빠져나가 정면의 입구로 밖에 나왔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근처인 이곳은 아키하바라에 비교하면 꽤나 춥다.

사람은 거의 없다.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의 골목을 생각해보면 쓸쓸함을 느낄 정도다. 때문에 밖에 나다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고 만다.

경비원의 모습의 없는걸 확인한 후,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향할 셈? 공항?」

쥬네브 국제공항은 여기서 수키로 거리다. 일본으로 돌아갈 거라면 그곳으로 가는게 제일 손쉽겠지. 플랜A로 나도 제일 먼저 생각했던 방법이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결론에 다다랐었다.

「아니, 플랜B로 간다」

「그 플랜B라는 녀석에 대해 자세히」

「LHC로 향한다. 거기서 합류한 동료가 헬기를 가져온다는 모양이야」

「잠깐, 헬기라니, 그 동료 뭐하는 사람이야?」

「다루를 통해서 알게 된 녀석인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이 작전은 그녀석이 없었으면 실현 불가능했어. 별명밖에 모르긴 한데, 그 녀석 이름이-」

나는 한번 멈춰 서서 크리스에게 돌아섰다.

 

「질 풍 신 뢰 의 나 이 트 하 르 트」

 

「또 중2병……? 나이트하르트라던가 자칭하고 있지만 일본인인거지?」

「다루의 설명으론 일본의 온라인 게이머라는 것 같다」

다루에게 나이트하르트의 신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질풍신뢰의 나이트하르트라고하면 엔스-하고 있는 녀석이라면 모르는 녀석이 없는데다. 프라츄의 호시키 팬으로 유명. 난 에린땅파다보니 나이트하르트와는 언젠가 한판 붙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었지만. 뭐, 2년 전의 시부야 지진 직전에 있었던, 에스퍼 소동 기억함? 그걸로 스크램블 교차점에 나타난 시원찮은 고교생이 나이트하르트 본인이라는 소문이라오」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더니, 크리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흐음. 에스퍼 소동 어쩌고는 살짝 들은 적이 있어」

「실력은 확실하다. 인터넷에도 정통하고, 인맥도 굉장……하다는 모양이다. 다루도 제법이지만, 그보다 더할 정도다」

「신용해도 좋은거려나」

대답하려할때 멀리서 휘슬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움찔해서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자전거에 탄 경비원이 호각을 불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큿, 발각됐나!」

서둘러 도망치려고 크리스의 손을 잡은 직후. 탕-, 하는 메마른 발포음에, 귀를 의심했다.

총을, 쏜 건가?

휘슬을 불고 있는 경비원의 뒤를 이어 남자 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 다 우리에게 총구를 향한 채 프랑스어로 고함치고 있다.

아무런 주저도, 경고도 없이 발포.

그렇다곤 해도 이 거리에서도 판별 가능한 단련된 몸은 소립자 물리학 연구원으로는 지나치게 이질적이다. 다시 말해 녀석들의 정체는-

「라운더 놈들, 예상이상으로 대응이 재빠르군! 크리스, 도망친다!」

「하, 하지만, 저 사람들 총을……!」

크리스는 몸을 웅크린 상태였다.

도주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크리스를 감싸듯 어깨를 끌어안았다.

경비원을 포함해, 라운더로 보이는 3명의 남자들과의 거리는 약 20미터. 녀석들은 부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사이에 둔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여기서 멈춰서 있으면, 또 다른 증원을 불러와 탈출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녀석들은 주저 없이 발포해올테지.

저 거리에서 발포하면 명중할 확률은 어느 정도지?

내가 맞는 정도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크리스가 맞을 확률도 제로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몸을 던져 지켜보려한들 확률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그걸 생각하면 냉정하게 있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좋지? 어찌하면어찌하면어찌하면--

패닉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호각을 분 경비원이 이미 도로를 지나오려 하고 있다.

도망쳐야할까. 맞서 싸워야할까.

그 어느 쪽도 실패할거라 생각된다.

"스즈하의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의 절망감이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른다.

격렬한 구토감.

글렀다. 나는 아직 1년 반 전의 사건으로부터 재기하지 못했어--

그 때, 짧은 경적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주의가 한순간 풀렸다.

「지금이다!」

정신이 드니 크리스의 손을 끌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다수의 총성이 울려온다.

오싹해진다. 두려움에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는 것을 이를 악물고 버틴다.

명중하면 죽는다. 그걸 싫어도 의식하게 되어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되살아나는 광경에는.

라보의 바닥에 피를 흘리며 마유리가 쓰러져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소꿉친구 소녀.

눈을 부릅뜬 채로 빛이 사라진 눈동자는, 원망스럽다는 듯 나를 향해져있었다.

내 시야는, 붉은 피의 환영으로 물들어 있었다.

 

 

[21, DEC, 2011 AM 12:03]

 

비상계단에는 붉은 비상등만이 켜져있었다.

--이건 환상이 아니다.

몇 계단 내려갈 때마다, 그 사실을 자신에게 하나하나 되뇌어줄 필요가 있었다.

어슴푸레하고 길고긴 계단.

도중에 문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지상에서 지하 100미터까지 완전한 외길이다.

밑에서는 단락적으로 땅울림 같은 것이 울려오는 듯……한 기분도 든다.

마치 지옥으로 가는 문 같다.

그 문을 향해서, 나와 크리스는 뛰어 내려간다. 몇 번인가 발을 헛디딜 뻔도 했지만 멈춰있을 여유는 없었다.

「저기, 상처는 괜찮아?」

뒤에서 따라오던 크리스가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렇게 물어본다.

내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스친 것뿐이야. 살짝 통증이 있는 정도니 신경쓰지마……!」

그 정도로 난사해댔는데도 이정도 상처로 끝난건 라운더의 실력이 안습할정도로 엉망이던가, 아니면--

 

. .  . . .  . . . .  . . .

그런 결과로 수속되고 있던가.

 

어쨌든 종이 한 장 차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내려가고 있는 계단은 SERN의 지하 100미터에 건설되어있는 전장 27km의 원형 터널, LHC<Large Hadron Collider>에 연결된, 보통은 사용되지 않는 비상계단이다.

크리스가 감금되어있던 시설에서 가장 가까운 "LHC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여기였다.

자물쇠를 부수고 이곳에 침입해, 내려가기 시작해 약 5분정도.

「하아, 하아, 하아……」

크리스의 숨이 거칠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보기에도 느려져있다.

「멈추지 마, 크리스티나! 이제 곧 지하에 도착한다. 그때까지 버텨.」

「아, 알고 있다……고」

아마도 좀 전의 라운더 녀석들은 쫓아오지 않겠지.

그것이야말로 플랜B의 노림수이자, 일부러 공항이 아닌 이 지하로 도망쳐온 이유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지하에 도착할 때까지는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드디어 돌연함마저 느낄 정도로 전조도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계단이 끝을 고했다.

자물쇠도 걸려있지않은 금속 펜스의 문을 가볍게 밀자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우리들은 말없이 어깨로 숨을 쉬어가며 문을 통과해, 터널에 내려섰다.

여기가, LHC.

세계 최대의, 소립자 가속기.

폭과 높이가 3미터정도 되는 터널의 벽은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다. 그다지 협소하다는 느낌은 안 들지만 완만한 커브로 인해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비상계단의 어슴푸레함과는 대조적으로, 등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되어있어 꽤나 눈부시게 느껴졌다.

떠오르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연극조로 말을 내뱉었다.

「이곳은 우로보로스인가, 호일 오브 포츈인가……!」

「아주 신났네…… 그래도 지금은 그런거 그만둬……」

크리스는 피식 조차 않고 두 팔을 끌어안고 있었다.

「저기, 좀 전의 사람들 쫓아올 가능성은?」

「녀석들은 오지 않을 거다. 여기선 지금 실험이 한창이니까」

「실험이라니, 양자-양자충돌실험?」

「그건 표면상의 이야기잖아? 우리들은 1년 반 전, SERN이 하고 있는 "진짜 실험내용"에 대해 알아냈고」

「Z프로그램……!」

미니 블랙홀 생성과 그것을 이용한 타임트래블 실험. 10년 전인 2001년부터 극비리에 행해지고 있던 그 실험의 내용은 비인도적인 것이었다. 생성된 미니 블랙홀에 피험자를 밀어 넣는 것으로 그들은 진짜로 먼 과거에 무작위로 날려진다. 그들의 생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때에 내려오다니, 자살행위야……! 젤리맨 리포트를 잊은 거야……!?」

「잊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알고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도망쳐온거다」

「아, 그런가……. 그래서 라운더 녀석들은……」

녀석들도 젤리맨이 되는 위험은 피하고 싶은듯하다.

출입금지 상태의 LHC는 그야말로 도주경로로 딱이라는거다.

위험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서도 라운더로부터 도망치기위해선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터널 내에 간단히 블랙홀이 출현해버렸다는 식의 사태는 있을 수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LHC는--이라기보다 SERN은 옛날 옛적에 크레이터가 되어있었겠지.

그래도 위험하다는 것에 변화는 없다. 라운더 녀석들이 쫓아오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가동하기 시작한 LHC는 그리 간단히는 멈출 수 없다고도 들었다.

이걸로 도주를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은 가능해보인다.

그 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진동하는 감촉이 있었다. 서둘러 꺼내들었다.

「휴대폰 가지고 있었어? 나한텐 여기 끌려올 때 빼앗긴 뒤론 금지 당했었는데」

「나이트하르트에게서 몰래 제공받은 거다.」

「일부러 일본에서 보내온 거야?」

「녀석의 굉장한 점은 인터넷을 사용해서 세계어디에서라도 어디로든 원하는 물건을 구현화할 수 있다는 거야」

조금 판타지틱하게 돌려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체험한 사람으로선 마법이라고해도 신기할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수단을 쓰면 그 물건이 전달되는건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아차, 그보다 전화. 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올 상대는 하나밖에 없다.

「여보세요, 나다」

「오카링, 마키세씨와는 합류함?」

전화를 걸어온건 예상대로 다루였다.

「아아. 예정보다 조금 늦은듯하긴 하지만 방금 전 페이즈3까지 완료했다. 상황은?」

「오카링, 간만에 생기가 넘치네, 중2병적 의미로. 지금 보기엔 과학자 녀석들 LHC를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오」

「그럼 페이즈4에 변경은 없는거지?」

「앞으로 2시간이내에 합류 포인트에 도착하지 못하면 위험하다오. 되겠음?」

「제때 맞추지 못하면 끝이다. 도착해보이겠어. 너도 조심해라. 이 작전을 성공시켜서 반드시 아리아케에서 첫 일출을 보자고」

「우히히, 당연하지. 인류의 과학을 발전시켜온건 전쟁과 에로라오」

질려서 한숨이 나올 듯 했기에 전화를 끊었다.

LHC는 지금 그야말로 Z프로그램의 타임트래블 실험을 행하려하고 있다. 아마 이번에도 인체실험이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피험자가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터다.

지금 우리들에게 그 피험자를 구할 방법은 없고. 그를 걱정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

「하시다는 어디서 전화를?」

크리스는 얼굴에 배어오는 땀을 닦는다. 이 녀석도 운동은 못했었지.

「나와는 다른 루트로 이미 LHC에 들어와 있어」

「에? 그런거야?」

「아아. 해킹을 걸어서 지금쯤 SERN을 대혼란상태로 만들었을거다」

라운더의 대응이 늦는 것도 그 영향이다. 겨우 숨을 돌린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다.

터널 내에 인기척은 없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땅울림의 소리뿐. 실험중인걸 생각하면 지나치게 조용하다고도 할 수 있다. 아니면 이것이 LHC에서는 "보통"인건가.

눈에 들어오는건 터널 한가운데 놓여 은색으로 빛나는 "파이프"같은 것뿐이다. 전장 27km의 터널은 이 직경 1미터미만정도의 "파이프"같은 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소립자 가속기. 가속공동이라고 불리는 때도 있다. 이 "파이프"같은 것이야 말로, LHC의 본체.

그걸 상상하니 "파이프"의 표면에 닿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버린다. 그럴 리 없다고 알고는 있어도 조금이라도 닿으면 폭발해버리는건 아닌지 두렵다.

「봐라, 크리스티나. 지금 그야말로 광속의 99.9999991%라는 무시무시한 스피드까지 양자를 가속시키는 중이라고」

「……그렇네」

크리스는 그 "파이프"에 흥미를 보이려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듯 벽에 붙어있었다.

이상하군. 이 녀석은 유례없는 실험광 소녀인데다, 호기심 왕성한 공순이였을텐데. 내가 아는 크리스라면 제일 먼저 흥미를 보였을 터이다.

눈으로 의문을 표해본다.

내 시선을 눈치 챈 크리스는 거북한 듯 터널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카베는 무섭지 않아?」

「…………」

호기심보다도 공포가 더 컸다는 건가.

아까 총격을 당했던 영향도 있을지 모른다.

「그보다 어느 쪽?」

어느 쪽으로 가면 되냐고 묻는 듯하다.

친절하게도, 벽에는 프랑스어와 영어 등으로 안내되어있었다.

나이트하르트의 합류 포인트는 "CMS"라고 불리는 LHC에 여럿 있는 관측소중 하나다.

「흐음. 여기서 라면 LHC 링의 거의 정반대의 위치인가. 제법 거리가 있네」

「하지만 제일 방비가 허술했다는 거지」

「위쪽에서 선수 칠 가능성은……?」

「그걸 위한 다루의 해킹이야. 눈가림은 해놨어」

게다가 SERN은 요새같은게 아니다. 라운더가 SERN에 잔뜩 있을 리도 없다. 모든 LHC의 출입구를 봉쇄하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곳에 파고들 틈이 생긴다.

「여기서 합류지점까지 2시간미만으로 주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리는?」

「대충 10km정도인, 가……」

「단순 계산으로 시속 5km인가. 빠르게 걸으면 어떻게든 될거 같은 거리긴 한데……」

「녀석들이 쫓아오지 않는다는 보증은 없어. 게다가 너는 10000미터 달리기를 한 적이 있나?」 

「없지만……」

나는 끄덕이고는 다시 크리스의 손을 잡고 뛰어나갔다.

「잠, 잠깐 오카베 당기지마……!」

「예정시간에 나이트하르트와 합류하지 못하면 끝이란 말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볼 수밖에 없어」

「나, 체력에 자신, 없……어」

「나도다」

게다가 다리도 다쳤다. 좀 전에 피격당해 얻은 상처는 깊진 않지만 통증이 조금 있다.

그래도 그 정도로 우는 소리를 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멋대로네, 정말」

크리스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젓고는 더 이상 불평은 하지 않았다.

1년 반만의 재회. 쌓인 이야기는 잔뜩 있다. 하지만 그건 탈출한 뒤라도 늦지 않다. 나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21, DEC, 2011 AM 13:32]

 

LHC의 링 내부는 춥다. 지하라는 점도 있어서 바깥보다도 서늘한 느낌이다.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달리다보니 달아오른 몸으론 그 추위가 오히려 기분 좋다.

역시나 10km나 되는 거리를 달리기만 하는 건 무리였고 운동엔 능력이 없는 나와 크리스로선 제법 건투한 편이었다.

지옥의 고통이었던 데다 목구멍도 바싹 말랐지만 덕분에 합류지점에는 예정보다 30분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오히려……너무 서둘렀잖아……하아, 하아……」

더는 못 걷겠다는 분위기로, 크리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도 서늘한 바닥에 다리를 뻗고 젖산이 쌓인 육체를 쉬게 했다.

조명이 비춰져서 어슴푸레한 머리 위를 지긋이 올려다본다.

그 이상할정도로 높은 천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CMS.

고요히 정적에 휩싸인 관측소에는 신비감마저 느끼고 만다. 마치 제단 같다고 할까.

소립자 충돌 실험 때에 그 소립자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한 LHC에 복수 존재하는 관측소중 하나. 그것이 CMS다. 그 수직 터널은 6층 빌딩과 비슷한 높이.

중앙에 치솟은 마치 만다라 같은 외견을 가진 거대한 관측 장치의 모습에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드러나 있는 무기질함과 완전한 대칭성.

다루는 이전에 곧잘 이 영상을 보며 "모에하다"고 떠들어댔던 물건이다.

현재진행중인 Z프로그램 실험은 다른 관측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의 CMS는 가속된 양자에게 있어선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크리스에게 있어선 여기가 현재의 골 지점이었다.

여기까지 지나온 10km 가까운 길에서와 같이 공동에 인기척은 없었다.

역시나 아직 나이트하르트는 오지않은 듯하다.

다루와도 여기서 합류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다루는 받지 않았다.

「그 녀석, 뭐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지금은 이동 중인지도 모르지만.

불안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정말이지.

일단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다시 연락해보자.

벽에 등을 붙이고 있는 크리스의 옆으로 이동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간이 생겨버렸다.

이 시간은 크리스와 이야기하는데 쓰고 싶다.

늘어져서 숨을 고르고 있던 크리스는 옆에 앉은 내 옆모습을 슬쩍 쳐다봤지만 곧 얼굴을 묻었다.

물이라도 있으면 건네주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형편 좋은 물건은 없다.

「……이 1년 반, 뭐하고 있었어?」

「너와 같아. 계속 감금되어있었다」

식사는 직원들과 같은 것으로 매일 삼시세끼 준비되었고 목욕도 가능했다. 희망하면 책이나 DVD, 게임도 주어졌다.

24시간, 계속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었고, 외부와의 연락을 취하는 건 금지되어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부자유도 없었다.

다루와 같은 방이었지만, 녀석은 내가 자력으로 재기할 때까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감금당한 방에는 인터넷은 연결되어있지 않았지만, 다루는 어찌한 건지 협력자--나이트하르트--와 연락을 취해, 이 오퍼레이션·발할라를 착착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은 보여줬어?」

「실험? 무슨 소리지?」

「Z프로그램의……인체실험」

거기서 크리스는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참석시키지 않았어?」

「……아니」

「나는, 참석을 강요받았어. 그뿐 만아니라 실험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까지 들었어. 마치, 내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기대하는 듯이」

확실히 크리스의 두뇌는 SERN으로서도 부디 이용하고 싶었을 터다.

전화렌지(가칭)을 만든 건 다루고, 그것을 타임리프머신으로 개량한 것은 크리스였다. 사실상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거들먹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망상을 늘어놨을 뿐이다.

그런 의미로, 이곳에 끌려온 후 우리들에 대한 녀석들의 대응의 차이는 납득할만했다.

「그럼, 피험자가 젤리맨이 된다고 알고 있는 실험을, 보게 됐던 건가?」

「피험자로 선택된 사람들은, 누구도 지금까지의 실험결과를 알지 못했어. 오히려 그들은 인류역사 최초의 타임트래블러가 되는 거라고 바람이 넣어져 실험에 참가하고 있었어」

「…………」

실험에 참석하다는 것. 그건 다시 말해, 살인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크리스에겐, 피험자를 구해주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나는……나는, 아무것도 당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끌려가지 않았고, 어떤 실험에 참석을 강요받은 적도 없다.

나와 크리스와는, 머리의 구조자체가 다르니까. SERN이 필요로 하는건, 내가 아니라, 마키세 크리스의 두뇌였다.

라니, 질투해서 어쩔 거냐. 바보 같으니!

「저기, 오카베」

크리스는 나를 보려하지 않는다. 어슴푸레한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허무하게도 보였다.

이 1년 반, 크리스는 홀로, 마음의 안식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왔는지도 모른다.

「여길 탈출하면 어쩔 셈?」

「난, 아키하바라에 돌아가서, 그리고, 과거를 바꾼다……」

다시 한 번.

과거를 바꾸는 것으로 미래를 바꾼다.

리딩 슈타이너라는 능력이 있는 나라면, 가능하다.

「나는, 마유리를……」

마유리를, 구하고 싶다.

1번은, 포기해버렸던 죄책감. 그것이 지금 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바꿀 방법은, 찾은 거야?」

질문에, 나는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 바꿀 방법따윈, 모른다.

내 안에 있는건 그저.

--과거를 바꾸고 싶다.

--1년 반 전에 잃은 소꿉친구를 되찾고 싶다.

그 생각뿐.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여기서 도망칠 필요는 없어」

「……뭐?」

「아마네양의 이야기 기억해?」

1년 반 전, 일본 인터넷 게시판에 나타난 미래인 존·타이타. 그 "본인"이며, 라보맨 넘버 008로서 내가 동료로 맞아들인게, 아마네 스즈하였다.

「2034년, 지금으로부터 23년 뒤, 인류는 역사상 최초의 타임머신 실용화에 성공한다. 개발한 것은 ……SERN이야」

「……그래서?」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여기서 도망칠 필요따윈 없어」

크리스는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바꾸고 싶다면, 오히려, 넌 SERN의 실험에 협력해야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진심으로, 말하는거냐?」

「마유리를 구할 해법만 생각한다면, 그게 나아. 적어도 앞으로 23년만 기다리면 2010년의 아키하바라에 "간섭"할 방법이 생겨」

「마유리를 죽인건 라운더와 SERN이다」

주먹을 꽈악 쥐며, 분노를 삼켰다.

「그 녀석들에게, 힘을 보태라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미안……, 나, 그런 의도는……」

나의 반응에, 크리스는 언뜻 보기에도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크리스가 진심으로 말한게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분노를 숨길 수가 없다. 이 1년 반, 포기해버렸던 내 안에, 아직도 이렇게 끓는 듯한 감정이 남아있다니, 스스로도 의외였다.

「가능성의 이야기를, 한거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마유리를 구하는걸 최우선으로 한다면, 최선의 해법은 무엇일까 하는……」

「그렇네, 합리적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아」

한때 나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자칭하며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라던가 떠들어댔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직면하자, 그런건 자신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저기, 아키하바라에 돌아가서, 그리고 어쩔거야……?」

크리스는 머뭇거리며 물어온다.

「마유리를 구할 방법에, 짐작가는건, 있어?」

「……다시 한 번, 타임리프 머신을 만들겠어」

「무리야」

크리스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기적 같은 우연이 겹쳐져 완성된 물건이야. 노리고 만든게 아니야……」

「너는, 설마, 여기 남고 싶은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쳐버렸다.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어있다. 자중해야한다고 이성이 호소하고는 있지만, 억누를 수가 없다. 이전에 크리스는 이렇게 비굴하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이 흘러넘쳤다.

크리스도, 변해버린건가. 1년 반의 감금생활로, 내가 썩어버렸던 것처럼.

     . .

이런 조수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 없잖아……. 하지만 1년 반이나 시간이 있으면 이것저것 생각해버리는걸……」

그래, 확실히 나도, 꽤나 생각했었다. 무엇이 옳은가. 자신은 잘못되어있었는가. 무엇을 하면 좋은가.

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 이 오퍼레이션·발할라였다.

「스즈하는, 나와 다루가 만든 레지스탕스의 멤버였다. SERN에 의한 디스토피아 지배를 저지하려 싸우고 있었다. 그 녀석은, 무엇을 타고 왔지? 대답해라, 크리스!」

크리스는 내 목소리에 몸을 떨고는, 자신의 두 팔을 끌어안듯이 했다.

「타임……머신」

「그래. 나와, 다루가 마든 타임머신이다. 미완성이었지만, 과거로는 갈 수 있었다. D메일도, 타임리프도 아닌, 물리적인 타임트래블을 실현시켰다. SERN을 제치고 말이지……!」

우리들은, 자력으로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

SERN의 힘따위, 필요 없어. 여기에 남을 필요따위, 없어.

남아선, 안된다.

「아마네양의 일……가능한,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지만 크리스는, 말하기 어려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뭐지?

「네가 타임머신에 대해 말한다면, 얼버무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

무엇을?

「그녀가 "관측"한 2036년의 일을, 생각해봐」

「관측……?」

「25년 후의, 나와, 너와, 하시다의, 상황」

「…………」

무심코, 꿀꺽하고 숨을 삼키고 말았다.

크리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짝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점을 파고들면, 난……알 수 없었어. 알 수 없어졌어. 이 1년 반, 계속 생각해봤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되서, 무엇이 옳은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되서……」

거기서 얼굴을 든 크리스의 눈은, 빨갛게 되어있었다.

울고 있는……건가?

「우리들은, 아마네양이 말했던 미래와 같은 결말로, 나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

「같은, 결말……?」

                    . . . .

「아마네양이 타고 온 미완성품 타임머신은, 너와 하시다가 만들었어. 마유리의 죽음과 SERN의 디스토피아 지배를, 없었던 걸로 하기위해서」

「아아, 그래」

「그래서, 어찌됐지?」

그만해.

「아마네양은? 그 타임머신은? ……마유리는?」

그만해!

「실패했어. 아마네양은, 실패했어. 그 편지를,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더 이상 말하지 마.

내가 애써 눈감고 있던 "결론"을, 말하지 마!

「나는, 같은 실패를, 두번이나 반복하……」

  . . .

「수속해버리는거야, 오카베」

말하지마!

「같은 결말로」

「어트랙터……필드……!」

세계의 의지.

결정론적 미래.

설령 과정을 바꾸어도, 미래는, 같은 결과로 수속된다.

마치, 세계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그쪽으로 인도하는 듯한 절대성을 가지고.

사실, 1년 반 전, 나는 몇 번이고 타임리프하여 손을 썼었지만, 마유리는 매번 목숨을 잃었다. 나는 결국 그 수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것이, 어트랙터 필드.

다세계 해석도 아니고, 코펜하겐 해석도 아니다. 2036년에 정립된 "세계"의 원리.

「어트랙터 필드가, 계속, 족쇄가 되고 있어. 우리들이 어떻게 발버둥 쳐도, 헛수고가 아닐까하고……. 다른 결과에 다다르는 해답 따윈, 존재조차 하지 않는게 아닐까하고……」

크리스는 말하며,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훔치고 있었다. 눈물에 목이 막혀온다.

「넌, 그래도, 여기서 도망가겠어? 실패한다고 알고 있어도, SERN에 대항하는 거야?」

「나는……」

「애초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 오카베가 리딩 슈타이너라고 하는 HENTAI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착각해버리지만. 내 쪽에서 보자면……아니, 너 이외의 모든 인간입장에서 보자면, 세계선의 변동조차 인식할 수 없는 거야. 그렇다면, 결과는 커녕 과정조차 바꿀 방법이 없어……」

나의 능력은 치트.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것.

「가지고 있기에, 나는, 바꿀 수 있는 찬스가, 있는 거야」

착각이라고 해도.

그 주어진 찬스를, 나는, 사용하겠어……!

「너만큼, 나는, 강해질 수 없어……」

크리스는 자학하듯 웃는다. 눈물로 범벅이 됐으면서 그런 식으로 웃는 언밸런스함이, 그대로 그녀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의 크리스는, 너무 불안정하다.

「아마네양의 "관측결과"가, 무겁게 짓눌러와, 그 무게에 부글거리며 가라앉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

스즈하가 관측한, 2036년의 마키세 크리스에 대한 평가. 그건--

「"타임머신의 어머니"인가……」

인류역사상 최초의, 타임머신 개발자.

디스토피아 성립의 원흉.

.....  . . .

SERN의 연구원.

「세계선이 수속한다면, 나는, 어찌해도, SERN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그렇지? 지금부터 20년 이상을, 이 장소에서, 타임머신 연구에 쏟게 되는 거야……」

「그걸 증명하는건 아무도 불가능해」

「모순되어있어, 오카베. 너는 2010년의 아키하바라에 "타임머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왔던, 자칭 "하시다의 딸"의 말을 믿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했던 2036년의 상황도, 믿지 않으면 안돼」

「그건--」

「너도, 미래를 "예언" 당했어.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나의 미래……」

나는, 14년 후에, 죽는다.

스즈하에게--존·타이타에게, 그렇게 예언되었다.

아니 예언이 아니다.

그건 스즈하에게 있어선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었다.

예측이 아니라.

결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는 그걸 부정해주겠어!」

크리스에게 다가섰다. 어깨를 붙잡고, 똑바로 그 눈을 들여다본다.

「모순이야……」

「아니 모순되지 않아!」

「하지만, 알 수 없는걸. 알이 먼저인거야? 닭이 먼저인거야? 응, 어느 쪽 인거야……!」

「D메일이다, 크리스. 그건 확정되어있는 과거에 간섭함으로써, 현재를 바꾼다. 그것과 같은 거야.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바뀐다.」

중요한건 무엇이 "결말"을 결정하는가다.

「세계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 무수한 "결말"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과정"도 생겨나고 있어! 무엇이 과정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그런건 신이라도 모르는 거다! 영화나 소설과는 달라. 명확한 구분같은건 없어!」

나는, 자신의 미래를 확정시키지 않을 테다.

반드시, 바꿀 수 있다.

마유리를 구하는 방법은 분명 있다.

나는 14년 후에 죽거나 하지 않는다.

「수속을 회피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 스즈하도, 그렇게 하려했다. 때문에 그 녀석은 1975년에 향했던 거야」

어트랙터 필드에서의 탈출.

세계의 운명을 크게 분기 시키는 "원인"에 간섭하는 것으로, 다른 분기로 탈출할 수 있다. 스즈하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스즈하에게 있어서 그건 IBN5100이었다.

「실패하긴 했지만,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나는 그렇게 믿어……!」

근성론이라는건 알고 있다. 크리스가 그런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것도.

하지만,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 너는, 어떤거야? 믿는 건가, 믿지않는건가. 어느 쪽이야?」

「…………」

각오를.

묻는다.

나는, 나 자신의 각오를, 보였다.

크리스는?

눈으로, 묻는다.

너 자신의 각오를.

들려줘.

「믿고 싶어……」

그것이, 대답이었다.

내 품에 매달려오는 그녀를.

살짝 끌어안았다.

떨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등을, 살며시 쓰다듬어준다.

줄곧, 만나고 싶었다.

1년 반이나 떨어져있었던, 동료.

마유리를 구하기 위해서, 함께 싸웠던 동료.

홀로, 시간과의 싸움에서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해자.

크리스가 있었기에, 나는 그 당시 힘을 낼 수 있었고.

타임리프머신 이라는 "되돌릴 수 있는 찬스"를 얻었고.

지금부터의 고난에도, 맞부딪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든든한 동료인거다, 너는.

크리스와, 다루가 없다면, 나는, 마유리를 구할 수 없다.

「절대로, 도망쳐주겠어. 우리들은, 아키하바라에, 돌아간다」

「벗어나게 해줘, 오카베……. 세계선의 수속에서, 나를……」

수속따위 시키지 않겠다.

그 미래를, 우리들은, 반드시 회피해보이겠어.

SERN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오퍼레이션·발할라는. 세계의 의지가 아닌, 오카베 린타로의 의지다.

 

 

 

 

[21, DEC, 2011, AM 15:04]

 

합류예정시간을, 5분정도 오버하고 있다.

다루도, 나이트하르트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와 손을 잡은 채로, 숨을 죽이고 계속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져왔다.

절대로 늦지마라, 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던건 다루 쪽이다. 정작 그 다루가 오지않을뿐 아니라, 여기까지 거의 완벽한 움직임을 보이던 나이트하르트마저 나타나지 않는건, 어찌된 건가.

다루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본다. 이미 이렇게 전화를 거는게 5번째였다. 그리고 한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조용하네……」

후련해진 표정을 한 크리스가, 머리위의 환풍구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음.

들리는건, 내가 귀에 댄 휴대폰에서 울리는 통화 연결음뿐.

이 세계에는 우리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시간마저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세계와 단절되어있다고, 실감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지하 100미터다.

다루, 어째서 전화를 받지않는거냐……?

나이트하르트도, 다루도, 예정시간에 이곳에 없는건, 어째서다?

지상에서 나이트하르트와 라운더가 충돌하여 총격전이 됐다던가 하는 개그는, 하지말아달라고…….

아니면 설마, 먼저 탈출해버렸다?

아니, 다루가 배신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다면, 무언가 사고가 일어난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합류지점을 착각한 건가? 하지만 여기가 CMS라는건 틀림이 없다.

그럼 달리 생각해볼만한 요인은?

--날카로운 구두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나와 크리스는 등을 떼어, 자세를 다잡는다.

휴대폰은 집어넣었다. 다루는 결국 받지 않았다.

크리스는 달라붙듯 몸을 기대온다.

구두소리의 행방은.

우리들이 온 방향과는 반대쪽 터널.

그곳에, 인영이 보였다.

혼자뿐이다.

역광으로 인해, 확실히는 보이지 않는다.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 구두소리로부터 알 수 있는건.

초조함마저 느낄 정도로, 느긋한 발걸음.

                   .

그리고, 그 구두가, 힐이라는 것.

나이트하르트는--

「여자……」

고개를 갸웃거린건 크리스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루는……함께가 아닌건가.

그렇다면 그 녀석, 어째서 전화를 받지않는거지?

「저기……」

크리스는 내게 달라붙은 채, 속삭였다.

그런 작은 소리도, 이정도로 조용하면, 나이트하르트가 있는 곳까지 들릴지도 모른다.

힐의 소리가, 6층짜리 CMS내에 반향한다.

「너무 조용하지 않아?」라는 크리스.

실루엣만으로 판단하자면, 나이트하르트라고 생각되는 여자의 스타일은, 일본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키도 크다. 어쩌면 나와 비슷할지도.

검은 슈츠와 타이트스커트로 몸을 감싸고, 거침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녀 커리어우먼같은 모습이었다.

일본인이 아닌건가?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당연하잖아. 그것보다 다루는 어디서 노닥거리고 있는지--」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오카베」

크리스는 왜인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중요하니 두 번 말했습니다"라는 인터넷 유행어를 생각해내고, 크리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 내려왔을 때는 '소리'가 났었잖아?」

났었다.

땅울림과도 닮은 저음이, 단락적으로 들려왔었다.

그건 LHC의 가동음이거나, 아니면 공조기의 소리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 이상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신음 같은 소리가, 멈춰있어」

「멈춰있다……고?」

귀를 기울여본다.

크리스가 말한 대로, 멈춰있다.

그 중저음은 지금, 전혀 들리지 않는다.

CMS에 도착한 직후에는 어땠지?

여기서는 소리가 들렸던가?

알 수 없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LHC는, 실험중일터. Z프로그램, 양자-양자 충돌실험. LHC를 바로 멈출 수는 없을 텐데, 어째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지……?

「미스터 오카베와, 미스 마키세죠?」

곤혹해하고 있는 나에게, 나이트하르트가 말을 걸어왔다.

「질풍신뢰의 나이트하르트입니다. 후후, 이 이름으로의 자기소개는, 부끄럽네요」

그 목소리는. 침착하고, 지적이고, 중2병과는 연이 없을듯해서, 질풍신뢰라는 핸들네임과는 전형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였던가?」

또다시,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의문이, 혼란 직전의 내 사고를 중단시켰다.

          . . . .  . . .

「본명은, 히이라기 아키코라고 합니다. 당신들과 같은, 일본인」

크리스는 무엇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이트하르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보다도, LHC가 멈춰있는 점을 신경써야지!

「LHC가, 멈춰있다. 금방은, 멈출 수 없을 터인데……!」

크리스의 손을 떼어내고, 나는 만다라 모양의 관측 장치로 달려갔다. 터널에서 뻗어온 "파이프"는 그 거대한 관측 장치를 관통해, 나이트하르트가 온 터널 쪽으로 뻗어나간다.

「녀석들이, 어째서 멈춘거지?」

그 "파이프"의 표면을 만져보려했다.

만질 수 있었다.

식어있었다. 감상은 그것뿐. 그 안에 양자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지나고 있는지 어떤지는, 만져본것만으로는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직후.

앞뒤의 터널에서 비치고 있던 빛이, 사라졌다.

단락적으로, 차례대로 스위치를 끄듯이.

형광등이, CMS를 중심으로, 차례차례 꺼져간다.

빛이, 도망가고 있다.

어둠에 눈이 적응하지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힐의 소리가 끊겨있었다.

「나이트하르트!? 어디지!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라운더가--」

「진정해주세요, 미스터 오카베」

침착한 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가, 널따란 CMS 공동 내에 울려 퍼진다. 결코 어조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그 목소리는 확실히 내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건지, 아직까지 파악할 수 가 없다. 조명이 사라진 탓에, 내 방향감각이 망가져버린건가?

크리스는, 어디에 있지? 주변을 둘러봐도,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만지고 있던 "파이프"로부터,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손을 떼면 어둠에 삼켜져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도 그럴게, 이곳은 지하 100미터. 바로 근처에서, 미니 블랙홀이 생성되고 있는 장소. 마유리를 살해한 녀석들의, 본거지.

                                  . . . .

「아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전부, 예정대로니까요」

나이트하르트가 그렇게 말했다. 위화감을 느낀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는 거지?

「당신, 정말로 나이트하르트인거야……?」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척이 있다. 그쪽으로 손을 뻗는다.

「크리스?」

「오카베……」

크리스의 몸이,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스 마키세는, 제가 나이트하르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실례되지만, 이전에 인터넷상에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밤오반과 카메하메파』씨?」

또다시 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에선, 위치관계를 파악할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 크리스는 방금, 뭐라고 했지?

「만난 적은 없어. 하지만 에스퍼 소동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점에 나타난 고교생은, 남자였어」

「그 인물이 나이트하르트라고, 누가 증명했죠?」

「그건……」

「미스 마키세는, 직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군요. 조금 실망했어요」

이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이봐, 가르쳐줘. 예정대로라는건, 조명을 끈건 다루인건가? 다루는 어디 있지? 설마 잡혔다거나 하는건 아니지?」

「오카베, 뭔가 이상해, 이사람--」크리스가 속삭인다.

「그보다, 라운더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빨리 탈출을!」

그걸 위해서라도, 다루와 빨리 연락을 취하고 싶다--

「라운더라면」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즐거운 듯.「이미 있어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시야의 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

잽싸게 시선을 돌렸다.

어둠속에서 떠오른 것은, 2개의, 작은 녹색 광점.

아니--

2개가 아니다.

점점 증식해간다.

6……10……14……20……

어둠속에 숨은, 녹색 악마들.

이건.

눈이다.

인간 10명의 붉은 눈이, 우리들을 향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녀석들은누구지어디에서튀어나왔지발소리가전혀나지않았어이광점은적외선고글이다이녀석들이있는방향은아마도우리가2시간가까이걸려지나온터널이고이녀석들은우리의뒤를쫓아온건가다루나나이트하르트는이걸눈치채지못한건가그렇다면어째서알려주지않았지CMS는정말로조용하고LHC에서의폐부를울리는듯한가동음조차멎어있고들리는건나이트하르트로생각되는여자의힐소리뿐이었건만10명이나되는병사가따라오는발소리도기척도전혀느끼지못했다자동차나자전거로쫓아온건가엔진소리도페달을밟는소리도들리지않았다게다가뛰어오는구두소리도마찬가지다모르겠다모르겠다--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요. P90의 총구가 당신들에게 겨눠져있는데다, 움직여버리면 "실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이트하르트의 어조는 어디까지나 평온했다.

「라운더……!?」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어느 샌가 목구멍도 바싹 말라있었다.

크리스도 말을 잃고 있었다.

무장한 남자들이 쫓아오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전혀다. 애초에 조명이 사라지고, 녀석들의 존재를 눈치챌 때까지, 시간은 30초도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잠복하고 있던게 아니다. 이 CMS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숨어있는듯한 기척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근처에 있었다……?」

「대략, 500미터쯤 떨어져있으면, 충분하답니다」

나이트하르트이자 히이라기 아키코라고 자칭한 여자의 목소리가, 의미 불명의 말을 한다.

「LHC링 정도의 커브라면, 그정도 떨어져있으면 보이지않아요」

이 여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돌연 내 주머니속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누군가로부터의 전화. 상대방은 자명하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건, 다루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받는건 불가능했다. 이 어둠속에서 보이진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10개의 총구에 겨누어지고 있는 공포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휴대폰의 진동음조차 시끄럽다, 빨리 끊어달라고 기도해버린다.

「계속 뒤에서 쫓아오는 줄도 몰랐던 건 두 사람이 무능해서는 아니랍니다」

마치 위로하는 듯한 말투. 차분하며 냉정하며, 신경을 긁는 말투.

「라운더 여러분이, 우수할뿐이니」

「역시 저사람, 나이트하르트가 아니야!」

떨리는 목소리로 크리스가 외친다.

「아뇨」자칭 나이트하르트이자 히이라기 아키코는, 크리스의 그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즉시 부정했다.

「나는, 당신과 미스터 하시다와 같이, 오퍼레이션·발할라를 입안했던, 나이트하르트랍니다. 전화, 받아보는게 어떤가요?」

전화……라고……?

「오카베, 이건, 함정이었던 거야……」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어둠속에서 휴대폰 디스플레이의 빛이 쓸데없이 눈부시게 느껴진다. 표시된 번호는, 다루의 번호가 아니라.

「이해하셨나요?」

휴대폰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와, 내 귀에 직접 닿고 있는 히이라기 아키코의 목소리가, 싱크로했다.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의 어깨를 무의식중에 끌어 당겼다.

「너도……라운더냐!」

「후훗」

여자의 비웃음 소리.

「그럼, 실험을 시작해볼까요」

「실험이라니 뭐냐!? Z프로그램인가!?」

「세계선 수속의 실증실험, 이랍니다」

「뭐……엇……?」

터무니없는 살기.

쭈뼛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싫은 예감이 든다.

녹색의 악마들이 총을 고쳐 잡는 기척이 느껴진다.

죽음의 기척.

토하고 싶을 정도의 기분 나쁨.

손가락 끝이 사악하고 식어가는 감각.

공기가 끈적인다.

「크리스, 도망쳐--」

총격음이 귀를 잡아 찢는다.

총구불꽃이 섬광이 되어 어둠을 가른다.

나는 크리스를 밀어 넘어트리듯이, LHC "파이프"의 그림자에 쓰러지듯 들어갔다.

다음은 그저, 몸을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가 무언가를 외쳤지만, 총격음에 덮여 사라져버렸다.

난사. 너무나도 일방적인. 질서도 뭐도 없는 공격.

머리 위를, 무수히 흩뿌려진 총탄이 날아다닌다.

전장에 선 경험따윈 한 번도 없지만, 내부까지 울리는 이 소리와 작렬하는 폭력에, 나는 절규하고 있었다--

 

 

[21, DEC, 2011 AM 16:10]

 

아픔이 있다.

사지가 찢겨져나가는게 아닐까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의식이 있어.

아직, 살아있다고 인식할 수 있었다.

크리스는……?

자신의 상처보다도, 제일 먼저 그게 신경쓰였다.

내 품 안에서, 크리스는 몸을 둥글게 하고 있었다.

「우, 우욱……」

신음성.

한숨 돌린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미스터 오카베. 살아있습니까?」

어느 샌가, 터널의 조명이 다시 켜져있다. 역광 속에서, 여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나는 어떻게든 일어서려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온몸에 열이 솟구쳐, 조금 움직인 것만으로도 아픔이 달린다. 거기서 겨우, 자신이 피투성이라는걸 알아챘다. 이 상태로도 살아있는게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다.

「우오, 멋지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흥분으로 들떠있다.

「정말로 살아있다니. 라운더에서도 정예를 모아, 진짜로 죽이라고 말해뒀다고요. 적외선 고글을 장착하고 있었기에, 어두워서 빗나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금, 숨을 쉬고 있어. 오히려 치명상조차 아닌 것 같군요」

아픔 탓에 머리가 들리지 않아, 히이라기라던가 하는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총격 따윈 없었다는 듯이 말투는 차분하다. 우리에게 대량의 총탄을 퍼부은 라운더 녀석들은, 멀리서 둘러싼 채 총을 겨누고 있다.

그레이의 도시용 위장복으로 몸을 감싸고 무장한 모습은, 군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트랙터 필드와, 세계선의 수속. 이 정도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상궤를 벗어나있어요. 우리들은 과학자다보니, 현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상,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녀석은, 우리를, 속였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다.

더 이상 SERN쪽 인간이라는걸, 숨기려하지도 않는다.

「이런 결과를 봐버리면, 믿을 수밖에 없어지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미스터 오카베. 아, 안심하시길. 의사를 대기시켜놓았으니, 곧 치료하도록 하죠」

격통이 전류처럼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흐른다.

새어나와버릴 듯한 고통의 신음을 참기위해, 나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는건, "300인 위원회" 전 멤버로부터의 엄명이기도 합니다. 그걸 위해서도, 미스터 오카베, 당신의 리딩 슈타이너 같은 초능력도 해명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아픔을 상회하는 분함.

너무 세게 깨문 탓에 입술이 찢어져, 입속에 피의 맛이 퍼져간다.

히이라기라던가 하는 여자의 말.

어트랙터 필드와 세계선의 수속.

그 주박을, 나는 부정하려했다.

미래는 개변시킬 수 있다고.

실패한 과거와 미래를 바꿔주겠다고.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면.

역시나, 존·타이타의 예언은, 헛소리도 낙서도 아닌.

엄연히 미래에 있는 "결과"인게 아닐까.

            . .  . .  .

내가 여기서 죽지 않은 것 자체가, 세계가 같은 결과로 수속하는 것을 이야기하는게 아닌가.

그래, 나는 오늘, 본래대로라면 두 번은 죽었다.

       . . .

하지만 운좋게 살았다.

총탄은, 두 번 모두, 내 몸을 스쳤을 뿐이었다.

그건, 운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는다는 결과로, 수속되고 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동시에, 내가 2025년에 죽는다는 "결과"도, 확정되어있는게 아닌가?

스즈하가, 그렇게 관측해버렸다.

스즈하 외에는, 미래를 관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결국,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어……?」

나뿐이 아니다.

크리스도, 관측 당했다.

스즈하가 본대로라면, 크리스는, 2034년에 타임머신을 개발할 때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SERN을 탈출할 수 없다.

「이번의 실증실험은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습니다.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두 사람 모두, 아니, 미스터 하시다를 포함하면 3명이군요. 실험에 협력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했는가에 대해선, 설명해두죠. 우리에겐 설명할 책임이 있으니말이죠」

히이라기는 또다시 떠들어대고 있었다. 노래하듯이. 유창히. 막힘없이. 차분한 어조로.

「간단히 말해서, 세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한거에요. 인과를 우리의 손으로 비틀어버리면, 실험결과에 노이즈가 섞여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샘플은, 좀 더 순수한 사상의 발견입니다. 덧붙여,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는, 미스터 하시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의 따님이 25년 후로부터 타임트래블 해온다던가. 그쪽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심하고 있진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 쪽도 타임트래블을 연구하고 있다 보니」

나는, 세계의 의지에, 붙잡혀있다…….

무슨 짓을 해도, 앞으로 14년 동안은, 죽지 않을 테고.

무슨 짓을 해도, 14년 후에, 반드시 죽을 테고.

무슨 짓을 해도--

크리스는 이제부터 23년간, SERN에게 붙잡힌 채 타임머신을 개발한다.

다루는 타임머신이 미완성인 채로 라운더에게 살해당한다.

스즈하는 2010년에 방문해 실패한다.

IBN5100은 내 손에 돌아오지 않는다.

마유리는, 구할 수 없다.

「그 따님에 의한 미래로부터의 정보를 기초로, 우리는 당신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 그건 그야말로 인과를 왜곡시키는 행위이고, 실험결과의 노이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년 후라면 몰라도, 아직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현재의 우리가 인과를 왜곡시키면, 검증이 무의미해져버린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었다.

1년 반 전, 나는 이미, 한번 포기했다.

몇 번을 해봐도, 그걸 반복할 뿐이다.

전부, 헛수고.

「결과는 만족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선의 수속은, 죽음조차 회피할 수 있는 것이군요」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그 때, 마유리를 구할 수 없었듯이.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건가…….

「미안하다……」

「미스터 하시다에 대해선 유감이지만 놓아주겠습니다. 그는 일본에 돌아가, 자식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23년 후의 우리가 타임머신을 완성할 때까지, 가능한 인과를 왜곡시키고 싶지 않은 겁니다.」

여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라운더의 병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밀랍인형인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총구는 확실히 나에게 향해있고, 게다가 그들의 손가락은 그 총의 방아쇠에 걸려있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수 있는 상태.

「미스 마키세에 대해선, 죄송하지만 남아주셔야겠습니다. 이유야 명백하죠. 미래에 "타임머신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되니까요. 그럼, 미스터 오카베는, 어쩌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해서는 당신의 의지를 존중하겠습니다」

세계선이 수속한다면, 지금의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듯하다.

그들의 총이 고장나는던가, 그들 머리위의 철골이 떨어지던가, 300인 위원회의 높은 분이 끼어들어서 "그 남자를 죽이지마라"라고 명령하던지, 또다시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총탄의 궤도가 빗나가던가.

어쨌든 온갖 개그스러운 요인에 의해, 나의 죽음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회피된다. 그것이 "실증실험"으로 증명되어버렸다.

「이쪽으로선 부디 리딩 슈타이너를 연구해보고 싶답니다. 물론 협력해주신다면, 좋은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300인 위원회도 당신을 환영 할테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개그가 진짜로 또 발동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너무나도 바보스러워서, 너무나도 공허하게 느껴져서.

나를 죽여 달라고,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진다.

「참고로, 인과를 왜곡시키고 싶지 않다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을 최소로 억누르려면 당신을 여기서 놓아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자를 선택해도 인과가 왜곡되지 않도록 공작은 가능합니다만, 그래선 어찌해도 노이즈가 섞이고 말죠. 보다 자연스러운 세계선 수속이야말로 우리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23년 후에, SERN이 디스토피아를 구축할 것도 없이, 모든 인간에겐, 자유의지 따윈 없었던 거다.

과정상에서 아무리 저항해도, 이미 결정되어있는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찌되었든 당신은 14년 후에는 사망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결정론적 의미로 배제공작은 불필요하다고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골라주시길」

이렇게 살아있는 것조차도, 무의미한 게 아닐까?

게다가, 이제, 아파서 일어나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피가 멈추지 않는데다, 눈도 흐릿해져왔다.

이제, 지쳤다.

쉬자.

저기, 누군가.

나를, 죽여줘.

그러면, 미래는 정해져있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으니까.

이런, 털실로 목을 졸라진채로 질식도 하지못한채 살아가는걸, 나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

「오카베--」

귀에 익은 그 목소리가, 흑백이 되어가던 세계에 색채를 되살렸다.

「오카베, 들어줘」

내 품안에서, 크리스가 꼼지락거렸다. 아무래도, 정신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크리스는 내 눈을, 밑에서 똑바로 들여다보더니.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나는, 여기, 남겠어」

「무슨……소리를……」

멍해졌다. 상처하나 없었던 크리스는 그런 나를 밀어 넘기듯이 일어섰다.

「크리……스……!」

쓰러진 채로, 손을 뻗었다. 손끝은 닿지 않고.

「땡스. 아까, 감싸줘서」

나는, 포기하고, 뻗었던 손을 되돌렸다.

「나는, 남겠어. 이곳에」

다시 한 번. 들려주듯 되풀이해서 말한 크리스는 내게 등을 돌렸다.

그건 다시 말해, 크리스가, 세계선의 수속을 받아들였다는 의사표시.

아니, 크리스의 자유의지 같은게 아니다. 결국, 이것도 세계의 의지다.

우리들의 의지 따윈 관계없는거다.

여기서 내가 붙잡아도 헛수고.

세계선의 수속은 절대적.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리스도 또한,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들이대어져, 포기해버렸다는 얘기.

그리고 "결정된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깔려진 레일에 올라 살아간다. 프로그램된 삶을.

미안하다 크리스.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했다.

너에게, 희망을 품게 해버렸다.

이룰 수 없는 희망만큼, 잔혹한 것도 없다.

그러니, 미안하다.

나를, 원망해도 좋다.

나는, 너를, 여기에서 데리고나갈 수 없었다--

「있지, 오카베」

등을 돌린 채로.

크리스가 중얼거린다.

나를 쳐다보려고는 하지 않지만, 고개를 떨군건 아니었다. 확실히 얼굴을 들고, 그녀는.

「단편인거야. 아마네양이 관측한건」

「뭐……라고……?」

크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않아서.

「확실히 나나 너의 미래는 관측되었어.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인건 아니야. 아마네양은 내가 죽을 때까지 빠짐없이 관찰한건 아니야. 그렇지?」

그 냉철함과 오만함을 품은 거친 말투는--

「내가 있는 이 "지금"과, 그녀가 관찰한 미래의 지점. 그 사이에 있는건, 공백」

1년 반 전, 아키하바라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때의, 천재 조수 그대로.

「거기에 파고들 틈이 있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과정은, 바꿀 수 있다.

「아까, 내가 말했지. 믿고 싶다, 고」

아까까지, 크리스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감정만으로, 이루어질리 없는 희망을 주고.

「논리성 따윈 완전히 무시한 채, 나는, 너를, 믿었으니까--」

그것을 믿어준 지금의 크리스는.

「나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을 테니까--」

내게 돌아선, 지금 크리스의 표정은.

「근거 따위 없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너는,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도 울어버릴듯한.

        . .  . .

「나는, 나의 의지로, 여기에 남을 테니까. 반드시, 데리러와줘」

그리고 쓸쓸한 듯한.

「약속이야, 오카베」

미소.

"함께, 아키하바라로, 돌아가자"

수 시간 전에 나눈, 약속을.

내가 우직하게 믿으려했던, 그 약속을.

세계의 의지가 거부한, 그 약속을.

믿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크리스가 세계에 표한 의지였다.

그랬기에, 내게서 멀어져가는 그녀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그 뒷모습에서 느껴졌기에.

나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걸, 참았다.

이것은, 이별이 아니다.

약속이 있는 한.

아무리 떨어져있어도,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

언젠가 반드시, 함께, 아키하바라에 돌아갈 수 있다.

그 미래를.

그 결말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어--

 

 

 

[29, DEC, 2011 AM 14:49]

 

1년 반 만에 보는 일본의 바다는, 아름다움도 무엇도 없었다.

한겨울의 저녁놀에 비춰져서, 반짝반짝 빛나고는 있지만, 빈말로도 아름다운 바다는 아니었다.

그런 바다를, 이래저래 4시간은 바라보고 있었다.

도쿄, 아리아케.

주변에는, 애니 그림이 그려진 대량의 종이봉투를 안고 있는 남덕후나, 섹시한 코스튬을 입은 채로 걷고 있는 여덕후 등이 있다.

코믹마켓 첫날.

연 2회의 제전.

이 시간이 되어서도, 보통은 거의 사람이 없는 국제전시장의 주변의 성황이었다.

생각해보면 1년 반전의 여름.

그때는 결국, 이곳에 오지 못했었다.

한숨을 쉰다.

그때, 시선을 느꼈다.

얼굴을 드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명백히 주변과는 동떨어진 양복차림의 남자가 2명 서서, 내 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다.

라운더에 의한 감시다. 숨을 생각 없이, 당당히 존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에게 "쓸데없는 짓은 하지마라"라고 무언으로 경고하고 있는 거겠지.

따지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SERN에서의 오퍼레이션·발할라는, 크리스가 그 곳에 남고, 나와 다루가 풀려나는 것으로 끝났다. 다루는 그때, 라운더에게 그대로 잡혀있었다는 듯하다.

--약속.

프랑스를 탈출한 후로, 매일같이 크리스의 그 미소가 뇌리에 맴돈다.

그때, 크리스가 했던 말…….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었던건지.

아니면 단순히, 나를 놓아주게 하기위해서 한 거짓말인지.

본심을 알 수 없다. 크리스가 그 정도로 논리성을 무시한 결론을 내린 일 따윈,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석이 "믿는다"고 말해주었기에.

나도 크리스의 말을, 그리고 크리스가 말한 나 자신의 말을, 이번에야말로 믿어보려한다.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맞서 싸워나가주겠어.

그것이 세계의 의지인지, 나의 자유의지인지. 어느 쪽이었는지 판단하는건, 죽을 때나 하면 된다. 지금은 그저 나아갈 수밖에 없다.

바닷바람의 탓인지 상처가 욱신거린다. LHC에서 내 몸을 종이 한 장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던 수백발의 총탄에 의한 상처는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그 통증을 참으며 주머니에서 낡은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앞면을 덮은 투명한 플라스틱 부분에는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바늘은 지금도 확실히 시간의 흐름을 새겨나가고 있었다.

「역시 오카링은 백의를 입어야, 오카링이란 느낌이네-」

대량의 종이봉투를 안고 있는 다루가, 땀투성이가 되어 걸어오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에, 잘도 그렇게까지 땀이 날 수 있구만. 나는 한숨을 쉬고는, 회중시계를 닫았다.

「모양새가 물건은 손에 넣은 모양이군」

「완벽하다오. 『에린과 Chu☆Chu』의 속편을 손에 넣는데 3시간을 줄섰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오. 시대에의 도전장이란 의미로」

「이 로리콘자식」

「그거 최고의 칭찬」

너무나도 실없고, 바보스럽고 저질스런 회화.

그런데도--

코끝이 찡했다.

계속 참아왔던 감정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정신이 드니 나는, 주위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고 있었다.

「너는, 정말로, HENTAI구만, 다루……」

「나뿐이 아니라, 일본인은 옛날부터 모두, HENTAI라오……」

보자니 다루도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성인 남자 둘이, 코믹마켓회장 앞에 서서 큰소리로 울고있다니, 정말이지 못 봐줄 꼴이다. 하지만, 멈추지가 않았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컸기에.

겨우 1년 반 전.

이런 회화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마저 느껴진다.

「어이, 다루……. 우리들은 장래에, 레지스탕스를 결성해서, 라운더와 싸운다는 것 같다……」

「각오는……히끅, 되있다오……」

다루가, 훌쩍이면서도 그렇게 대답했기에, 오히려 내 쪽이 놀랐다.

「너……진심으로 말하는거냐?」

「그걸 위해, 이렇게 최후의 코믹마켓에 온 거였고.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그런가. 이 녀석은 이 녀석 나름대로, 궁리하고 있었구나…….

「더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훌쩍, 그래도, 괜찮은거지?」

「나는 말야, 히끅, 오카링의 오른팔이라는 걸로 되있잖아……. 그러니 최후까지 함께 라오……」

「……역시나 슈퍼 하커다」

「해커, 지」

눈물로 젖은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되는건 라운더의 감시다. 녀석들을 어떻게든 떨궈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같은 초보가 그런 짓이 가능한 걸까?

「저……」

거기서 말을 걸어온건, 메이드틱한 복장의 코스플레이어 여자애였다.

나와 다루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들여다보면서 손수건을 건네온다.

「괜찮다면, 쓰시겠어요?」

「오오-!? 이, 이 코스는……리얼 꿈 클래스! 즈큥이라오!」

다루가 콧김을 뿜으며, 손수건을 정중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자애가 보는 앞에서, 손수건의 향기를 전력으로 들이마셨다.

완전 비호감이다…….

「너에게 평생, 모에모에☆큥! 결혼해줘-!」

「아하하……. 그, 그건 좀……」

「너말야, 유명한 코스플레이어지? 유키짱이었나?」

「응. 맞아」

「그럼, 조금 부탁이 있는데」

「결혼은, 무리라고」

「코스플레이어쪽 지인을 잔뜩 모아주지 않겠어? 그래서, 말야--」

거기서 다루는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저기서 양복 입은 아저씨가 둘 있잖아? 그 두 사람에게 말야, 코믹마켓이 얼마나 훌륭한 이벤트인지 알려주고 싶단 말이지」

다루……. 설마…….

「……저 사람들, 누구?」

「도지사의 첩자라오. 덕후와 코믹마켓을 박멸하려는 위원회의 사주로」

「그건……오타쿠 문화 멸망의 위기네」

「그런 이유로, 부탁할 수 없을까」

「맡겨줘」

유키라는 이름의 코스플레이어는, 밝게 웃으면 끄덕였다.

「잠시 친구들 모아올께」

「오키도키. 잘 부탁해!」

「오-키-도-키-? 그건, 무슨 의미인거야?」

「완전OK, 라는 의미라오」

「흐응. 그럼 나도 쓸게. 오키도키-♬」

그리고 유키는 코스프레 회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됐으니 오카링……」

다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나를 본다.

「도망칠 준비해둬. 녀석들을 따돌리오」

「……좀 전의 애에게 위험은?」

「이런 곳에서 일반인 상대로 총질해대는 바보 있겠냐고. 게다가 유키짱 일행에게 부탁한건 어디까지나 코믹마켓의 훌륭함을 가르쳐주라는 것뿐이었고」

폭력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건가.

「오키도키다」

나도, 눈물을 닦았다. 가능하면 플로럴한 향기가 나는 여자의 손수건을 쓰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별수 없이 다루에게 양보했다.

「작전명은, 어떻함?」

다루에게 질문 받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래도 갑작스런 이야기였기에,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렇군. 작전명은--」

양복남 두 명의 주위에, 코스플레이어와 카메라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유키를 중심으로, 우선은 애니송을 합창하고 있다.

라운더씩이나 되는 남자들이, 우왕좌왕하고있다.

「"왈큐레"로 간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동시에 달려 나갔다.

지금부터, 우리들의 싸움이 시작되는거다.

세계선의 수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지를, 그리고 동료를 되찾기 위한--

적어도 나아게 있어선, 지금부터 14년간은 확실히 계속될 싸움이.

「만화책의 최종회 같은 기분이라오!」

「오랜 기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니 귀찮게!」

코믹마켓에서 돌아가는 덕후들을 뚫고 나가며, 나는.

오랜만에, 그 "딱히 의미는 없는, 작별의 약속어"를, 이제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국제전시장을 향해, 중얼거렸다.

「엘·프사이·콩그루……이것이, 슈타인즈게이트<운명석의 문>의 선택이다」

 

 

【왈큐레】

--북유럽신화에서, 전사한 용자들을 라그나로크<최종성전>에 대비해 발할라에 맞아들이는 역할을 맡은, 전쟁의 여신들의 총칭.